책의 구성만 보면 일반적인 한국 미술사 책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다른 미술사 책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지은이가 미술사를 공부한 학자가 아닌 그림을 전공한 화가라는 점이다. 이 책의 지은이인 전주교육대학교 장지성 교수는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이지만 옛 그림을 따라 그리는 임모(臨摸)를 하면서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생긴 의문과 생각을 화훼영모화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우리에게 친숙한 사임당 신씨, 겸재 경선, 김홍도 등 다양한 인물, 작품은 물론 전통 회화를 전공한 화가의 관점을 더해 미술사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이징, 최북, 신명연 등의 인물과 작품을 담아 비교하고 설명한다. 또한 관련 자료가 없어 지금까지 잘 다뤄지지 않았던 고대와 삼국시대의 화훼영모화의 흔적도 지은이만의 관점으로 정리했다.
이 책에는 화훼영모화의 배경과 화법, 대표 화가와 작품을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그림들이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받아 풍부하게 실려 있는 한편 화훼영모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한국화가 한은경의 모사 작품도 함께 담겨 있다. 이러한 생생한 그림들을 통해 독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감정과 사상이 화훼영모화에 어떻게 담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한국의 화훼영모화』는 기존의 한국 미술사를 ‘화훼영모화’라는 화목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우리 전통 그림을 앞으로 어떻게 현대에 맞게 계승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임당 신씨, 겸재 정선, 김홍도에서 현대 미술가 천경자, 곽석손까지
시대별로 살펴보는 화훼영모화
이 책 『한국의 화훼영모화』는 화조화와 화훼영모화를 다시 구분해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은이는 화훼영모화가 동물과 식물을 그린 그림으로,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을 뜻하는 화조화보다 더 넓은 범위로 해석한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화훼영모화 읽기」 장에서는 화훼영모화의 의미와 화조, 초충, 영모, 어해와 같은 등 여덟 가지 그림 소재에 대한 설명과 형식, 표현 기법, 구도, 내용 등을 알아본다.
1장 「고려시대까지」에서는 고대의 유물, 장식품은 물론 삼국시대의 〈수렵도〉 〈천마도〉와 같은 벽화, 통일신라시대의 감상용 화훼영모화, 고려시대 불화와 〈청자철화화훼절지무늬매병〉과 같은 청자 등에서 볼 수 있는 화훼영모화를 살펴본다. 2장 「조선시대 초기」에서는 고려와 중국 송대와 원대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원체화풍 화훼영모화를 당시의 사회상과 화풍과 함께 사임당 신씨의 〈초충도 8폭〉, 안귀생의 〈전 안귀생 화조도〉, 김정의 〈이조화명도〉 등과 같은 대표 작가와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매죽무늬항아리〉와 같은 청화백자를 분석하고 이야기한다. 3장 「조선시대 중기」에서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묵죽도’와 ‘묵매도’와 같은 문인화풍이 발달하면서 조선의 고유색이 드러나는 배경을 알아보고 신세림의 〈죽금도〉와 김시의 〈매조문향〉, 조속의 〈노수서작〉과 〈고매서작〉 등 관련 인물과 여러 작품을 살펴본다.
4장 「조선시대 후기」에서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발달 배경과 함께 윤두서, 겸재 정선, 최북 등의 그림을 보며 화훼영모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비교한다. 5장 「조선시대 말기」에서는 남종문인화가 성행하게 되는 흐름과 김정희, 신명연 등의 인물과 그림, 민화 속 화훼영모화를 들여다본다. 6장 「현대 미술 속 화훼영모화」에서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화훼영모화가 현대 문화나 재료와 어떻게 융합해 변모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천경자의 〈꽃〉, 곽석손의 〈축제〉 등 여러 작가와 작품을 살펴보며 제시한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온 화훼영모화
전통을 잇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다
화훼영모화는 각 시대마다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감정을 시적으로 담아내고 소망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며 세상의 이치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책의 담긴 다양한 화훼영모화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는 아직 연구가 덜 되어 있지만 지은이의 눈으로 살펴본 현대의 화훼영모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화훼영모화는 한지와 비단에 그리던 전통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외부의 변화를 수용하고 융합하는 새로운 실험과 함께 지금 시대에 맞는 화훼영모화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 미술가 장우성의 〈오염지대〉는 고결한 선비로 비유되어 많이 그려지던 백로를 자연환경 파괴의 희생자로 표현해 지치고 힘이 빠진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홍용선의 〈스티로폼에서 오는 봄-홍도〉는 스티로폼과 아크릴 채색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전통 화훼영모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작품에 담긴 정서는 여느 화훼영모화보다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그림 화훼영모화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과 깊게 연관된 소재와 사회 문제를 그림에 반영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현대의 화훼영모화에 속하는 그림들은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로운 그림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의 흔적이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고 전통과 현대가 융합되어 새롭게 나타나는 작품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롭게 등장하는 전통 아닐까. 이 책 『한국의 화훼영모화』는 시대별로 화훼영모화를 들여다보면서 지금 우리가 화훼영모화를 어떻게 계승해야 할지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새로운 형태로 우리 삶에 녹아들어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화훼영모화를 통해서 앞으로의 전통 계승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