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삶을 읽는 사고

塑する思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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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유연하게 생각하라
일본 디자인 업계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사토 다쿠의 고찰들

『삶을 읽는 사고』는 일본 상업 그래픽 디자인계 제일선에서 활약 중인 사토 다쿠(佐藤卓)가 삶과 디자인에 관한 경험과 생각을 풀어낸 책이다. 롯데 자일리톨 껌, 메이지유업 맛있는우유, 닛카위스키 퓨어몰트의 성공적 패키지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사토 다쿠. 세상이 흔히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자아’나 ‘개성’보다는 ‘유연함’과 말랑한 ‘소성(塑性)’을 강조하고, ‘적당함’이나 ‘위화감’ 같은 개념의 숨겨진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시각은, 더 좋은 삶을 위해서 어떤 사고방식이 필요한지를 본질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편집자의 글

‘자일리톨 껌’ ‘디자인 해부’로 유명한 디자이너 사토 다쿠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 다쿠.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시대와 문화를 꿰뚫는 시각을 바탕으로 제품의 본질을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껌이나 우유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의 디자인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등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두각을 드러내온 그는 더 나아가 디자인의 단면을 아트워크로서 고찰하는 전시〈디자인 해부〉등 참신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콘텐츠 제작자, 브랜드 전략가, 전시 기획자로 활동의 지평을 넓히는 중이다.『삶을 읽는 사고』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사토 다쿠의 책이다. 디자인과 삶에 관한 특유의 고찰을 진솔하게 풀어낸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고회사 덴쓰(電通)에서 일을 시작한 사토 다쿠는 일찍이 독립해 닛카위스키 퓨어몰트, 롯데 자일리톨 껌, 메이지유업 맛있는우유 패키지 디자인 같은 유명한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플리츠 플리즈 이세이 미야케’ 프로젝트, 가나자와 21세기현대미술관과 도쿄과학박물관의 아이덴티티 작업, 무사시노미술대학 미술관과 도서관의 로고 및 사이니지, 가구 디자인 작업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대학 시절까지는 밴드에서 퍼커션을 연주하며 음악을 전업으로 삼으려 한 적도 있는 그는 지금도 라틴음악과 서핑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베테랑이고, ‘낡고 이상한 가게’를 구태여 찾아다니며 살금살금 물건을 고르는 귀여운 취미도 있다. 또 ‘디자인 공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소유자로서 NHK 〈일본어로 놀자〉아트 디렉션을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교육방송 프로그램 〈디자인 아〉의 제작자로 뛰어들기도 한다. 『삶을 읽는 사고』에는 이렇게 생활과 세계 전반을 아울러 사고하는 그의 예리하고도 흥미로운 견해가 가득 담겨 있다.

‘적당한 디자인’이야말로 어렵다

사토 다쿠의 삶과 디자인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상의 본질을 향하려 하는 솔직한 접근과 시각이다. 그가 일본 닛카위스키의 ‘퓨어몰트’를 상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주도한 과정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위스키 광고를 담당하게 된 그가 ‘사실 별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위스키가 없다’는 정직한 동기에서 발상을 하기 시작해 ‘그렇다면 어떤 위스키가 마시고 싶은가?’ ‘맛 좋고 향기롭게 숙성된 위스키의 매력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어떤 술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등의 질문을 설정하고 발로 뛰며 하나씩 풀어나가는 일화 속에, 자신에게 납득 가능하고 타인에게 와닿을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답을 찾아나가는 진중한 방식이 드러난다.

사토 다쿠가 기획하고 진행한 전시 〈디자인 해부〉도 이런 면모가 잘 나타난다. 그는 일본 점유율 1위 상품 롯데 자일리톨 껌, 메이지 맛있는우유를 비롯해 후지필름의 일회용카메라, 다카라토미의 리카짱 인형 등 일상적이면서도 특징적인 상품을 하나씩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사물 표면의 그래픽 디자인에서부터 물건의 감촉에 관한 정보 등 심층적인 정보를 해부하듯 펼쳐놓아,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에 깃든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게 하고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물과 디자인을 대하는 그의 관점이 잘 담긴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부터 진행 실무까지, 생생하고도 심도 있는 이야기가 책 안에서 펼쳐진다.

고집스러운 유연성, ‘소성’의 사고

사토 다쿠는 오래전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기까지 더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한 자신만의 태도를 갖고 있다. 그 핵심은 책의 원제이기도 한 ‘소성적 사고’다. 일본어로나 한국어로나 조금 낯선 울림을 가진 ‘소성(塑性)’이란 부드러움의 한 가지 형태로 ‘탄성’과 대응되는 개념이다. 용수철처럼 잠시 변했다가도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부드러움이 탄성이라면, 소성은 마치 찰흙처럼 꾹 누르면 아예 형태가 변해버리는 부드러움을 말한다. 대개 세상에선 자기 형태를 유지하는 탄성이야말로 제대로 된 디자인의 방향이고 삶의 태도라고 하지만, 사토 다쿠는 자아를 억제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때마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순수하게 대응하는 다양한 ‘소성’의 스킬이 특히 디자이너에게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흔히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자아’나 ‘개성’보다는 ‘유연함’을 강조하거나, ‘적당함’ ‘위화감’처럼 부정적으로 통용되는 개념들의 숨겨진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군침 돌게 하는 디자인’ 등 재미있고도 새로운 발상을 제시하는 그의 특별한 시각은 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본질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 힘주어 말하는 사토 다쿠는 그래서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디자인이란 자연스레 도덕과도 연결되며 인류를 둘러싼 환경 전반을 생각하는 행위이기에 지역과 사회에서 디자인을 가장 효율적인 활용할 방식에 대해, 또 후배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성장해나가야 하는지 방향에 대해 제시하는 실천적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 펼쳐놓은 그의 경험적 고찰들은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대단히 우직하고 진지하다. 세상의 변화에도 쉽게 가치가 흔들리지 않을 만한 작업을 해온 그의 힘은 바로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그 태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개성으로 회귀하려는 ‘탄성(彈性)’보다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생각을 재형성하는 ‘소성(塑性)’이 필요하다는 사토 다쿠의 이야기는 디자이너의 활동 양상을 더 세밀한 방식으로 보게 하는 키워드를 던지는 듯하다.

민병걸(그래픽 디자이너)

이 책은 ‘기획’과 ‘표현’이라는 디자인 사고의 균형을 쉽고 진지하게 담아낸다. 또한 성숙한 사고를 지니고서 사회를 인정하는 전문가의 세계를 보여주며, 사고의 틀에 고착된 창작자에게는 또 다른 디자인 방식과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채병록(그래픽 디자이너)

사토 다쿠는 사회적 현상에 저항한다. ‘디자인한다’라는 말에도, 그것을 부가가치로 여기는 사회에도, 그에 영합하는 디자이너에 대해서도……. 사회 주류의 흐름과 다른 그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사고방식을 잠시 바깥에 두고 오는 ‘소성적’ 태도가 필요하다.

정준기(그래픽 디자이너)

책 속에서

무엇을 매체로 선택할지보다, 어떤 탤런트를 기용할지보다, 광고 문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보다, 어디서 촬영을 할지보다,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 닛카위스키의 본질적인 세계관을 전하는 것이 본래의 광고다. 그리고 그 방식은 본질을 기존의 광고 매체를 통해 전하는 것이기보다 상품 그 자체에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 애당초 맛에 자신이 있다면 ‘젊은이용’이라는 미명 아래 굳이 희석해서 도수를 낮춘 위스키를 내놓을 것이 아니라 이걸 그대로 마시도록 하는 게 어떨까? 닛카위스키를 취재하면서 느꼈던 소박함, 때 묻지 않음, 세련되지 않음, 있는 그대로, 촌스러움 등 보통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키워드를 위스키 세계에서라면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았다. 그 모든 것이 ‘맛있어 보이는’ 시즐(sizzle)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디자이너가 되었다」, 37–38쪽

한 가지 형태만을 유지하려 하면 그 밖의 수많은 가능성을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스스로 둥근 사람이라고 표명해버리면 늘 둥근 일만 들어온다. ‘나는 붉은색’이라고 밝히는 순간부터 붉은색과 관련된 일만 들어온다. 인생은 자연의 풍요로운 변화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인생에 변화를 주지 않고 둥글게 혹은 붉은색으로만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갖추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굳이 왜 그런 각오를 해야 할까? … 물론 디자인이 자기표현 행위가 될 수도 있기는 하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디자인도 있으니까. 그러나 자기표현이 디자인의 본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소성적 사고」, 62–63쪽

원래 ‘사이로 들어가서 연결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다. 상품 포장이라면 상품의 내용을 최대한 정확하게 제삼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진열대에서 매력적인 위화감을 느끼도록 만들려면 어떤 식으로 디자인을 해야 할까? 이것이 성립하려면 그 상품이 주변의 다른 상품들과는 분명히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용에 자신이 없는 상품은 표면적인 디자인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내용에 자신 있는 상품일 경우 그것을 그대로 디자인에 표현하면 지금까지 없던 존재감, 즉 위화감 때문에 눈에 띈다.
우선 내용이 중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면 필연적으로 개성 있고 좋은 의미에서 위화감 있는, 눈에 띄고 존재감 있는 상품이 된다.

「이해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해하기 쉬운 것」, 172쪽

처음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나를 찾아온 목적은 고구마말랭이 상품 개발과 관련된 상담이었다. 하지만 나는 상품 개발을 논하기 전에 고구마말랭이 생산과 관련된 지역민이 참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구조를 먼저 만들라는 제안을 했다. ‘고구마말랭이학교’라는 조직 명칭과 함께 “고구마말랭이를 통해 우주를 보여주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분들은 당연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품 개발 관련 상담을 하러 왔는데 갑자기 ‘학교’ ‘우주’ 같은 말이 나오니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터무니없는 공상을 이야기한 게 아니었다. 나는 고구마말랭이를 통해 정말 우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해부〉에서 〈디자인 아〉로」, 201–204쪽

서핑은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내 무력함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나와 환경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도 단련시켜준다. (…) 자신의 무력함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론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자연에게 배우는 쪽이 훨씬 납득하기 쉽다. 파도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적당한 파도가 찾아오지 않으면 오직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면서 즐기는 것. 자신을 우선하는 대신 환경을 먼저 파악하고 신체가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놓기 위해 평소에 자신을 단련해두는 것. 이것이 바로 디자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서핑」, 218–219쪽

차례

시작하며

나는 이렇게 디자이너가 되었다
소성적 사고
디자인은 감성적인 일인가
디자인이라는 분류
중앙과 주변
디자인하기, 디자인하지 않기
부가가치 박멸 운동
펭귄아 안녕, 잘 지내렴
적당한 디자인
대증요법과 체질 개선
이상한 것에 대한 사랑
침과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현장
배려하기
이해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해하기 쉬운 것
디자인 공모
〈디자인 해부〉에서 〈디자인 아〉로
서핑
구조와 의장
‘편리함’이라는 바이러스
음식과 신체와 디자인
질서와 무질서와 디자인

마치며

사토 다쿠

그래픽 디자이너. 1955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광고기획사 덴쓰(電通)에서 근무하다 독립 스튜디오 사토다쿠디자인사무소를 설립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 디자인을 중심으로 브랜딩, 제품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며 활동해왔다. 상업 디자인뿐 아니라 디자인의 단면을 아트워크로서 고찰하는 프로젝트와 전시에도 주력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닛카위스키 퓨어몰트, 롯데 자일리톨 껌, 메이지유업 맛있는우유 패키지 디자인이 있다. NHK 〈일본어로 놀자〉아트 디렉션을 비롯해 ‘플리츠 플리즈 이세이 미야케’ 프로젝트, 가나자와 21세기현대미술관과 도쿄과학박물관의 아이덴티티 작업, 무사시노미술대학 미술관과 도서관의 로고 및 사이니지, 가구 디자인 작업 등으로도 유명하다. ‘21_21 디자인 사이트’의 디렉터로서 2007년 〈물〉, 2014년 〈쌀〉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NHK 〈디자인 아〉에는 제작자로 참여했다. 다양한 작업으로 마이니치디자인상, 도쿄ADC상, JAGDA신인상, 도쿄TDC상, 뉴욕ADC상, 일본패키지대상 금상, 디자인포럼 금상, 하라히로무상 등을 수상했다.

이정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리아트 통역과정을 거쳐 동양철학 및 종교학 연구가, 일본어 번역가, 작가로 활동 중이다. 『내일의 건축』『마카로니 구멍의 비밀』『연결하는 건축』 『삼저주의』『백』『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준비된 행운』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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