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페이퍼맨: 종이를 코딩하는 디자이너

Paperman

온라인 판매처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종이 사용량 계산기 ‘페이퍼맨’ 개발기

종이는 까다롭고 예민한 물질이다. 같은 종류의 종이라도 제지사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고, 지종은 수백 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종이양을 계산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 최규호가 10년 동안 개발하고 디자인해 온 앱 페이퍼맨은 바로 이러한 일을 돕는다. “책 제작을 돕는 종이 사용량 계산기”라는 부제를 단 앱 페이퍼맨은 책을 내지와 표지로 나누어 각 부분에 필요한 종이 사용량을,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질 책의 정확한 책등 두께를 계산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안내한다. 한 책에 들어가는 종이양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일은 책이 의도한 대로 제작되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책의 탄생 배경에는 종종 페이퍼맨이 자리하곤 한다.

『페이퍼맨: 종이를 코딩하는 디자이너』는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 저자 최규호는 대학교 수업에서 영감받아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 페이퍼맨을 10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지구력과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디자이너로서 실천한 다양한 시도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2부에서는 「페이퍼맨 사용자를 위한 24가지 질문」을 통해 앱을 100% 활용할 수 있게 돕는 가이드를 제시하며 종이 사용량 계산의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페이퍼맨을 직접 사용하는 현직 디자이너와 편집자 6명의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종이를 다루는 일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더했다.

편집자의 글

소니엔 워크맨, 픽사엔 렌더맨이 있다면

출판계엔 페이퍼맨이 있다

이름에 충실한 “페이퍼맨(Paperman)”은 책을 만들 때 필요한 종이 사용량을 계산해 주는 앱이다. 개발한 지 2년 만에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책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익숙할지도 모를 이름이다. 책의 기본단위인 종이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래서 책 한 권에 들어가는 종이양을 계산하는 일은 종종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페이퍼맨 사용자라면 문제없다.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계산을 페이퍼맨이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종이책을 위해 존재하는 디지털 앱이라니, 어딘가 독특하다. 종이양을 계산하는 데 애먹는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주로 속한 업계는 사양산업이라며 우울한 전망을 예측하는 기사가 매년 쏟아지는 출판업계다. 그런데 이런 비관적인 업계의 종사자를 위해 존재하는 디지털 앱이라니. 그것도 10년 동안 멈추지 않고 꾸준히 업데이트되었다니, 어딘가 분명히 독특하다.

옛것 대 첨단, 아날로그 대 디지털, 종이책 대 스크린. 『페이퍼맨: 종이를 코딩하는 디자이너』에서 저자 최규호는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두 지점의 공존을 고민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비교와 대치의 대상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을까? 둘을 융합하는 방법은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장점을 흡수하고 극복하는 것뿐일까?” 인공지능(AI)이 책을 쓰는 시대에 종이책을 만든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새것, 혹은 옛것에 대한 고집의 충돌이 아니라 기존과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공존을 가리키는 건 아닐까? 저자 최규호는 상상 속 종이책이 현실이 되도록 페이퍼맨 앱을 코딩하는 작업을 10년간 이어왔다. 종이양을 계산하는 디자이너는 페이퍼맨이 실행 중인 휴대폰 스크린을 바라보고, 최규호 디자이너는 페이퍼맨에 정보를 업데이트할 종이책들을 매만진다. 페이퍼맨의 여러 기능 중에서도 책의 ISBN 바코드를 스캔하면 책에 쓰인 종이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페이퍼맨 엑스레이’ 기능은 지면 위의 사용자를 다시금 스크린 위로 안내하며, 두 매체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종이책은 종이책대로, 스크린은 스크린대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을 향해 있는 디자인

앱 페이퍼맨에는 사용자를 향한 배려가 곳곳에 깃들어 있다. 이전에 계산한 내용을 쉽게 누락하지 않고 언제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계산 노트’와 여러 가지 ‘기록’ 기능, 앱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계산식을 풀이한 ‘계산 기준’ 기능, 수치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책등 두께를 시각화한 ‘실제 두께’ 기능, 원하는 책등 두께를 구현하도록 돕는 ‘목표 책등 두께 설정’ 기능, 한 책에 여러 종이가 사용될 때 책등 두께를 구할 수 있는 ‘책등 두께 선택 합산’ 기능, 자주 쓰는 판형과 종이 두께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바로가기’ 페이지, 계산한 조건을 바꾸고 싶을 때 과거 계산 기록을 불러와 일부 조건만 수정해 다시 계산하는 ‘기록된 계산 불러오기’ 기능, 인쇄 관련 용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용어 설명’ 기능 등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개발하고 추가해 온 기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게 오로지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앱의 자세는 『페이퍼맨』에서 드러나는 저자 최규호의 디자인 철학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 직관적인 앱을 만들기 위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다. 숫자에 약하지만 사람들이 편리하게 종이 사용량을 계산할 수 있도록 앱 페이퍼맨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최규호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편의성을 늘 먼저 고려해 왔다. 페이퍼맨은 처음 5년간 수익 모델이 없었다. 그저 그와 같은 “디자이너들을 비롯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적게나마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뜻깊었기에 무료든 유료든 개의치 않았다. 『페이퍼맨』 2부는 저자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페이퍼맨 사용자를 위한 24가지 질문」은 언뜻 앱 사용법을 알려주는 듯 보이지만, 그 기획 배경엔 독자가 인쇄라는 분야와 좀 더 가까워지길 기대하는 저자의 바람이 깔려 있었다. 앱을 사용하는 현직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진솔한 대화가 실린 「페이퍼맨 사용자 인터뷰 시즌 2」에서는 실무자에게 든든한 동료이자 따듯한 영감이 되는 페이퍼맨을 엿볼 수 있다.

곤경에 처한 북 디자이너와 편집자를 구출하는

우리의 다정한 페이퍼맨

종이책이 전자책에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고, 수많은 지면이 스크린으로 대체되며 “스마트”라는 수식어가 관습적으로 따라붙는 시대에도 책에 어울릴 종이를 고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크린 속 북 디자인이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종이 샘플과 씨름하다 보면 종이란 아주 까다로운 물질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닫는다. 종이를 고를 땐 책의 기획 의도와 콘셉트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지만 할애할 수 있는 예산도 무시할 순 없는데, 이렇게 여러 요소를 동시에 헤아리며 종이 사용량을 계산하기란 쉽게 지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페이퍼맨은 이런 곤경에 처한 디자이너와 편집자를 멋지게 구출해 낸다.

어딘지 만화 속 영웅 캐릭터 같은 “페이퍼맨”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종이 사용량 계산으로 골치가 아픈 디자이너와 편집자 앞에 슬며시 나타나 모든 책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독자를 생각할 때, 페이퍼맨은 디자이너와 편집자를 생각한다. 사람을 향한다는 최규호의 디자인 철학은 앱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사용자에게 다정하게 스며든다. 『페이퍼맨』은 이러한 페이퍼맨의 “창작 여정과 통찰”을 담았다. 추천사를 쓴 민구홍 디렉터의 말을 빌리자면 “디자이너, 개발자뿐 아니라 자신만의 결과물을 꿈꾸는 모든 이의 책상에 이 책이 놓이면 좋겠다.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자신만의 “한 끗 다른” 작품을 상상할 용기를 선사할 테니 말이다.“

추천사

페이퍼맨은 개념과 상상 속의 책 디자인을 현실로 연결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도구다. 디자이너가 크고 작은 불편과 문제의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동료와 공유하는 데, 즉 저만의 페이퍼맨과 스크린우먼을 만드는 데 이 책이 안내자가 되면 좋겠다.

최슬기(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슬기와 민 일원)

이 책은 디지털 시대의 창작자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여정을 안내하는 지침서다. 디자이너, 개발자뿐 아니라 자신만의 결과물을 꿈꾸는 모든 이의 책상에 이 책이 놓이면 좋겠다.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자신만의 “한 끗 다른” 작품을 상상할 용기를 선사할 테니 말이다.

민구홍(안그라픽스 랩 디렉터, 민구홍 매뉴팩처링)

책 속에서

앱으로서 페이퍼맨은 일종의 탈정형 UI를 꿈꿨다. UI가 꼭 정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사용하기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랐고, 그래서 기존의 보편적인 원칙과 틀을 고려하지 않고 주로 나의 직관에 따라 디자인했다.

「실행하는 글: 한 끗과 부족함」, 14-16쪽

존 레넌, 밥 딜런, 크리스 마틴의 어딘가 불완전하고 불안한 음악이 좋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래서 더 아름답고 때로는 편안하고 또 훌륭하니까.

「실행하는 글: 한 끗과 부족함」, 17쪽

내가 디자인을 하든 프로그래밍을 하든 곡을 쓰든 그 작업은 나만이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북돋우기 위해서도 내가 남달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다수가 대체 불가하다고 인정하는 어떤 반열에 오른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단어」, 24쪽

프로젝트 이름은 귀가하며 떠올린 이름으로 정했다. 소니의 워크맨, 픽사의 렌더맨과 같이 관련 업계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페이퍼맨(Paperman)’이라 이름 붙였다.

「아는 건 없어도 용감하게」, 39쪽

세상 모든 일은, 특히나 처음에는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모르거나 청하길 두려워하는 상태가 정말 도움이 절실한 상태일 것이다.

「Help!」, 59-60쪽

종이가 머금은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또다시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렇게 종이는 사람을 잇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기 위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시금 종이를 이어 붙여 책을 만들고 지면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지면들, 인연들」, 84쪽

디자이너는 각 종이의 특성을 헤아리며 독자에게 같은 내용도 다른 정서로 전달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독자는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같은 내용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 매체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 108쪽

이따금 돌아보면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일들이 있는데, 앞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 때는 기억해야 한다. 이미 만난 우연들이 필연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직 만나지 못한 다른 우연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래서 늘 시도하며 기다려야 함을.

「숨은 이야기를 알려줄래」, 125쪽

차례

추천사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에 의한, 디자이너의 | 최슬기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 개인 프로젝트의 힘 | 민구홍

실행하는 글: 한 끗과 부족함

1부
디자이너라는 단어
Say hello to Steve
아는 건 없어도 용감하게
귀를 기울이면
Help!
페이퍼맨 사용자 인터뷰 시즌 1
디치의 글꼴
지면들, 인연들
이제는 양쪽 모두, both sides now
수익을 고민하며
Salut, le monde!
아날로그 매체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
숨은 이야기를 알려줄래

2부
페이퍼맨 사용자를 위한 24가지 질문
페이퍼맨 사용자 인터뷰 시즌 2

종료하는 글: 포스가 함께하길

최규호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아마추어 음악가로 활동한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규호초이(Guho Choi)’를 운영하며, 책 제작을 돕는 앱 페이퍼맨(Paperman)을 개발, 디자인,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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