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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이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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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뉴미디어아트 2세대

유비호 작가의 첫 이미지 작품집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뉴미디어아트 2세대 작가 유비호의 2000년 초기작부터 2022년 최근작까지의 전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첫 이미지 작품집이다. 유비호는 동시대 지식인이자 예술가로서 주어진 임무와 의미를 현실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이를 싱글채널비디오, 퍼포먼스,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미디어아트와 긴말하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유비호의 작업은 디지털을 표방하나 2000년대 미디어아트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즈음의 현실을 반영해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최소한의 기술로, 최대한의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시대의 과도기적 성향으로 인해 그의 작품 세계는 선배 세대와 영향을 주고받기보다 자립적인 실험 과정을 통해 탈장르적 성격을 구축했는데,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의 뉴미디어아트사에서 그 위상을 새롭게 제고할 수 있다.

유비호 작가의 첫 이미지 작품집인 이 책 『멜랑콜리×이스케이프』는 첫 개인전 〈강철태양〉(2000, 보다갤러리)부터 가장 최근의 〈미제 Incomplete〉(2020, 대안공간루프)까지 그가 23년 동안 일관되게 보여주고자 했던 자본주의에 기반한 동시대의 다양하고 특별한 사건들과 상황들(예를 들면, 형제복지원 사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등)을 투영한 작품들을 총망라해 기록되었다. 특히 이번 작품집에서는 유비호의 작품 세계 저변에 깔려 있는 기본 정서이자, 동시에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드러내는 두 가지 키워드, 즉 ‘멜랑콜리’와 ‘이스케이프’를 전면에 내세워 그의 작품에 내재한 두 개의 의미를 강도별로 스케일화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수평적으로 두고, 좀 더 객관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고자 했다.

한편, 이를 시각적으로도 의미 있게 풀어보고자 도서의 앞뒷면이 모두 표지로 기능하면서 위아래가 반전되어 중심으로 모이는 방식의 과감한 편집 디자인적 시도도 이루어졌다. 이는 도전적이고 저항적이며 실험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온 유비호 작가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작품집 또한 책 자체로서 하나의 실험적인 작품으로 기능하고자 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책에 담긴 작가의 방대한 작품을 통해 23년간 한국 사회 속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과 그중 그가 주목한 역사적 사건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가 던진 비평적 질문이 어떻게 미적 작품으로 환원됐는지 알아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 이미지 작품집에는 유비호의 작품을 초기부터 지켜봐 오며 작품의 시대적 의미를 발견해 온 대안공간루프의 양지윤 디렉터와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의 글이 실려 이해를 도우며,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편집자의 글

“나의 한 발은 현실의 바위에 굳건히 내딛고,

또 하나의 발은 흐르는 물의 표면에 살포시 담그며 역사를 성찰한다.”

이 글은 나의 작업노트 중 일부이다. 예술 창작 활동을 하는 나에게 직면하고 있는 현재는 감각적으로 세계를 탐색해 나가는 주요 요소라 여긴다. 나는 예술적 모토를 실행해 나가기 위해 2000년 첫 개인전 발표 이후, 동시대 예술가/기획자/미디어 연구자들과 함께 ‘미디어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예술과 사회 연구모임’을 공동 조직하고 활동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단순한 창작 행위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동시대 사회/문화와 연결시켜 예술적 행위/사건이 일어나는 순간들에 집중했다. 이 시기 나의 탐색과 실험은 대략 2006년부터 2015년의 10여 년의 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예술-사회-행위(ART×ACT×SOCIAL)’에 대한 질문들을 다양한 프로젝트들로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들에서 현실의 다양한 층위에 접속할 수 있는 ‘개입과 탈주’를 모색하며, ‘빅브라더의 통제/감시로 진행되어 가는 불안한 사회에 대한 우울감’ 등을 비디오, 퍼포먼스, 라이브 방송 등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근대(성)의 정면이 보여주는 마술환등(phanasmagoria)의 환영, 이미지, 물신의 환영들이 비추어지는 주어진 역사에서의 위험, 비상사태를 드러내려 했다. 단순히 상품-교환가치로 만연한 텅 빈 세계와 미래에 대한 일방적 판타지로서가 아닌, 구원의 대상이자 방향으로서의 ‘지금 시간(Jetzeit)’으로 충만한 다양한 시간의 장소들을 불러오는 시도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신화 속 인물과 사건, 그리고 잊힌 시간들에서 발견한 허구나 추측을 통해 물신으로 가득한 소비의 쾌락과 현세의 공허한 역사에 저항하고자 했으며, 근대성의 역사주의에 맞서는 다층적인 질문들을 중심으로 잊힌 사건과 재료들을 망각에서 불러내어, 이들을 현재와 다시 연결해 다시 현재를 생경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책 속에서

〈이너 뷰 InnerView〉에서 유비호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된 시스템이나 재난의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대신, 누군가의 책임으로 전가하기에 급급한 상황과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지독한 불운이라 한탄할 뿐이다. 반복되는 재난은 사회 곳곳을 멜랑콜리한 상태로 만들어간다. 유비호는 멜랑콜리를 사회가 앓고 있는 병리적 현상으로 바라본다. 죽음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 상실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거나 인간으로서 냉대를 당하는 다양한 층위의 멜랑콜리한 심리적 상황을 탐구한다.

M9쪽

벤야민의 멜랑콜리는 ‘출구 없는 절망 위에서도 끝없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천적 삶’을 제시한다. 구원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파국적 세계에서 슬픔을 파편적으로 제시하여 폐허를 만드는 작업으로 이는 완결될 수 없기에 무한 반복된다. 유비호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불신하는 방식으로 그 다음의 세계를 상상한다. 절망적 사태를 기만하지도 유희하지도 않는 변증법적 멜랑콜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양지윤, 「멜랑콜리와 이스케이프 사이」, M115쪽

〈미제 Incomplete〉에서 유비호는 협업 크리에이터를 모집하여 전시 기간 중 전시장 내 설치된 ‘어떤 오브제’에 대한 미적 개입을 함께 수행한다. 이런 미적 개입은 전시장 내 ‘어떤 오브제’와 대립/충돌하거나 침투, 변이/변태 또는 증식/성장의 작업 행위로 개별적이고 내면적 예술 행위로 다뤄진다. 작가는 이를 ‘제도화되고 무뎌진 미감과 의식을 낯설게 거리 두는 과정’이라 말하고, 그 과정이 쌓여 새로운 설치물로 함께 전시공간은 변이해 간다. 이때 전시장은 조화롭고 평화로운 상태라는 공상 속 공존이 아닌, 위험과 문제를 동반하며 함께 살아가는 현실 속 공존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유비호는 예술 작업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탈출해 보는 훈련을 관객과 함께 해왔다.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그 다음의 세계를 함께 꿈꾸길 바라기 때문이다.

E9쪽

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하나의 경우의 수인 동시에 궤적이자 경로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모든 의미를 채우지는 않는다. 유비호의 경우 우리가 보는 것은 끊임없는 왕복 운동과 떨림, 하늘에 대한 외침과 조울증, 높낮이의 단차와 매 순간에 대한 전적인 자기동일시, 침잠과 흥분, 집요한 추적과 유희, 세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받아들임, 지적 반성과 조용한 노동이다. 이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란 분열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순결하고 강인하며 아름다운’이라고 묘사한 가파도의 하늘처럼, 예술적 삶의 경로와 운동들은 덧없어 보이지만 대체할 수 없는 궤적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유진상, 「순결하고 강인하며 아름다운: 유비호에 대하여」, E104쪽

차례

멜랑콜리 MELANCHOLY → M9
에세이 ESSAY → M113
작품목록 INDEX → M119

이스케이프 ESCAPE → E9
에세이 ESSAY → E97
작품목록 INDEX → E105

Ryu Biho

Since his first solo exhibition Steel Sun in 2000, she has been working with contemporary artists, exhibition curators, and media sociologists to co-organize and research new artistic activities in a media-connected society, such as Art Practice through Hacking (2001) and Parasite-Tactical Media Networks (2004-2006). While organizing and executing these activities, he has also executed various projects such as Dramatic Practice (2010), Co-operative Escape (2010), Twinfix (2011), In My Sky at Sunset (2015), Letter from the Netherworld (2018), and Untitled (2020) to pose intimate aesthetic questions to examine the diverse and extraordinary events and situations of contemporary society that are differentiated from previous societies.

He has participated in major curatorial exhibitions such as ‘Korean Video Art 7090 Time Image Devic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19), Boundaries(Kunstraum Kreuzberg Betanien, 2018), Multiple Time(Nam June Paik Art Center, 2016), Gwangju Biennale 20th Anniversary Special Exhibition (5.18 Democracy Square, 2014), The Future is Now(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13), and Bad Kids Now/Here (Gyeonggi Museum of Art, 2009). He was invited to Seonggok Museum of Art in 2015 to hold a solo exhibition, In My Sky at Sunset (2015), to commemorate the 2013 Seonggok Tomorrow’s Artist Award, and has recently participated in the Kunstlerhaus Bettinaen Artist Residency (Berlin, 2017), Bilbao Arte Artist Residency (Bilbao, 2018), and Glenfiddich Artist in Residence (Dufftown, Sco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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