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저공비행: 또 다른 디자인 풍경

低空飛行―この国のかたち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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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켄야는 “디자인이란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고 말한다. 그의 디자인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와 도전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스테디셀러 『디자인의 디자인』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시작이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다음에는 늘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하라 켄야는 잠재된 가능성과 미래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명쾌하게 그려내기 위해 디자인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내일의 디자인』에 그려갔다.

기술과 트렌드의 빠른 변화에 맞춰 디자인의 가치 또한 변화해가는 시대다. 이 시대를 향해 하라 켄야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풍토와 문화의 가치화를 위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디자인의 가치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하라 켄야는 로컬과 투어리즘, 호텔과 주거 환경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역할을 깨달았다. 그렇게 『저공비행-또 하나의 디자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디자인의 디자인』이 디자인을 논한 지론서였다면, 『내일의 디자인』은 미래를 구상하는 활동 지침이었다. 그 뒤를 잇는 『저공비행-또 하나의 디자인 여행』은 풍토와 자원을 미래 자원으로 삼는 새로운 산업과 그 가능성을 형태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 앞에 선 하라 켄야의 포부다.

편집자의 글

『디자인의 디자인』 『내일의 디자인』에 이은 제3탄 『저공비행』.
디자인하는 과정에 주목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하라 켄야.
그의 또 하나의 디자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저공비행으로 바라보는 정보의 독자성과 계절의 순도!
2019년 하라 켄야는 「저공비행-High Resolution Tour」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그가 직접 일본 전역의 장소와 시설을 방문해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하라 켄야는 국내의 한 매체 인터뷰에서 하라 켄야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코로나와 관계없이 세계는 점점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럴수록 개별적인 장소에만 있는 ‘오리지널리티’가 상대적으로 중요해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로컬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며 모국인 일본의 여러 곳을 소개하는 「저공비행(低空飛行)」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호텔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호텔 산업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호텔이 로컬을 머무르고 싶은 거점으로 만들고 나아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호텔을 여행지의 숙박 시설로만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자연환경이나 문화적 즐거움을 집약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아주 재미있는 기능을 가진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가 제안하는 ‘저공비행’이란 무엇일까? 비행기 여행일까? 아니다. 지상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낮은 고도로 지역을 탐험하며 세심하게 둘러보는 여행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하라 켄야는 ‘저공비행’을 통해 지역의 풍토와 자연환경이 지닌 가치의 가능성을 파헤쳐 곳곳의 로컬리티를 끌어내고자 했다. 이른바 하라 켄야만의 새로운 디자인 시선이자 방법론이다.
『저공비행-또 하나의 디자인 여행』에서 하라 켄야는 ‘저공비행(低空飛行)’으로 곳곳의 풍토와 문화를 마주하는 사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더 많은 사람의 의식 연쇄를 만들어가는 데로 관심이 옮겨 갔다. 멋지다고 느낀 장소와 지역에 사람의 존엄과 긍지가 지속되는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 이른바 모든 사회적 활동과 꾸준히 대화하는 일의 중요성이랄까?
또 하나의 가치, 또 하나의 디자인, 또 하나의 자원의 형태를 독자와 함께 찾아보기 위한 하라 켄야. 과연 그가 담아낸 로컬의 풍경과 미의식은 어떤 모습일까?

저공비행의 풍경이란.
인간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전통이나 풍토라는 미래 자원을 방치하고 있다. 「저공비행」 프로젝트는 여기에 의문을 품고 시작한 일이다. 즉 이 땅이 지닌 잠재력에 눈을 뜨는 체험이었다. 또 그 지역만의 특징을 담아낸 호텔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하라 켄야‘의 야심도 담겨 있다. 생각해보면 ’저공비행‘으로 보는 경관은 아직 제공된 적이 없다. 이른바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원과 가치가 저공비행의 영역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로컬의 가치란.
자연은 다채롭다. 여러 나라를 돌아봐도 저마다 다른 다채로운 자연 풍경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 하나 같은 바다가 없고 어느 곳 하나 같은 산이 없다. 나라는 열매가 가지가 휠 정도로 열려 있는 나무 같은 존재다. 지역은 그 나라의 아이덴티티와 로컬리티를 나타내는 줄기이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문화와 삶의 모습은 쭉쭉 뻗어나가는 가지와 같다.

가치의 현실화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를 끌어들여 자연을 더 돋보이게 해 그 장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함께 멋지게 선사한다. 그러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호텔‘이 있다고 생각한다. 호텔은 그것이 서 있는 풍토와 전통, 식문화의 가장 좋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나라가 미래를 위해 다음 장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면, 스스로 국토와 풍토를 재해석해가야 한다. 어떻게 수용하고 자국의 풍토와 역사, 문화를 어떻게 해석해 제시할 것인가? 그 만듦새가 21세기 국가들의 풍요를 좌우할 것이다.

이를 위한 디자이너의 역할이란.
디자인의 역할은 ’본질을 꿰뚫고 가시화하는 것‘이다. 물건 생산에서 가치 생산으로 시점과 발상을 전환하고, 이 땅의 잠재성을 자원으로 운용해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지역과 문화가 만들어내는 가치의 본질과 잠재성을 감지하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형태를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디자인이라는 나무에 올라가 그 위에서 보이는 풍경을 이야기한 것이자, 한 나라의 미래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책 속에서

『저공비행』은 일본과 일본의 미래 가능성에 관해 쓴 책이다. 단 절대 일본을 치켜세우고자 쓴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포스트 공업화의 비전 없이 지지부진한 일본이 이제 그만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질책이다. 그런 책을 한국어판으로 출간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한국 독자가 어떻게 읽어줄지 걱정도 되었다. 동시에 깨달은 점도 있었다. 이 책은 공업 입국을 이룬 이후의 동아시아 전체의 비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저공비행」, ⅰ쪽

본업이 아닌 활동에는 사실 미래가 잠들어 있다. 당장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도 몸을 던져 하는 행위에는 일의 본질이 숨어 있다. 분명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의 디자인」, ⅶ쪽

내가 생각하는 호텔은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 주변 경치를 훔치지 않는다. 만약 호텔이 없었다면 풍경도, 경치도, 식문화도, 문화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땅에 잠재된 매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구상된 미의식과 지혜의 결정체다. 즉 호텔에 머무는 것 자체가 진짜 목적이 된다. 그런 호텔이 전국 도처에 만들어지는 정경을 상상했으면 좋겠다.

「저공비행, 또 다른 차원의 관광」, 20쪽

‘관광’의 가능성을 미래를 짊어질 ‘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상도로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의 방식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관광이야말로 21세기 최대 산업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제조업으로 전후 부흥을 끌어내 고도성장을 이루며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야기의 제1장은 이미 종반에 접어들어 이제 우리의 전통문화와 풍토를 자원으로 삼는 다음 장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호텔이란 무엇인가」, 37쪽

물론 문화란 소비재처럼 사용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를 계승하는 사람들의 감성 근간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은 것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재현할 힘을 지닌 유전자와 같다. 건축도, 정원도, 그림이나 의장도, 공예도, 생활 미학도, 메이지 무렵 그 기세가 꺾인 듯했던 일본 문화는 창고 깊숙이 넣어둔 선조의 유산과도 같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먼지를 털고 새로운 세계 문맥 안에서 다시 빛을 비추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문화의 다양성에 공헌하고 풍요롭게 빛나게 할 자원을 자국 문화에서 찾아내 미래 자원으로 활용할 때가 도래했다.

「근간을 바라보는 방법」, 66쪽

일본에는 “깨어 있을 때 다다미 반 장, 잘 때 다다미 한 장起きて半畳、寝て一畳”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 사람은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자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생활공간의 형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본질은 보지 않고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비열한 미래주의나 하는 짓인지 모른다.

「공간의 다의성」, 127쪽

‘럭셔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순위와 경쟁을 뛰어넘는 최고를 추구하는 성향 혹은 정수라는 표현도 장점만 꼽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에 럭셔리가 있다면 역시 그것은 도가 지나친 사치가 아닌, 자연의 신비를 가치의 원천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자세의 언저리에서 샘솟는 경건한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초목을 두다」, 180쪽

홍콩 디자이너 알란 찬Alan Chan과 ‘의식주’ 다음에 올 네 번째 요소가 무엇일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알란은 ‘행行’일 거라고 말했다. 홍콩은 좁아서 홍콩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 가는 일을 본능적으로 쾌락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네 번째 요소로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휴休’라든지 ‘창創’이라든지 그다지 신통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행’은 그럴 수 있겠다고 납득했다. 홍콩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항상 이동을 동경한다.

「의식주 그리고 행」, 202쪽

‘세토우치’를 ‘인터 로컬 미디어’로 정의하고 회의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자원과 가치의 가능성은 세토내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숙박, 식문화, 이동, 미디어, 건축, 디자인, 아트가 일본 방방곡곡에 어떤 연계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정부, 지자체, 투자가 혹은 기업이 이것들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바로 지금부터가 중요한 승부처가 될 것이다.

「세토우치디자인회의」, 224쪽

차례

동아시아의 저공비행
‘우리’의 디자인
목적지를 향해

제1장 저공비행으로 바라보다
유동으로 향하는 세계
숫자로 생각하기
관광자원은 미래 자원
공업화 시대에서의 일본
재팬 하우스
저공비행, 또 다른 차원의 관광
반도항공

제2장 아시아를 돌아보다
호텔이란 무엇인가
제프리 바와의 건축
식민지 지배 후에 태어난 것
오베로이 발리
대항해시대의 중국
아시아의 좌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과 제조업
근간을 바라보는 방법
열려 있다는 것

제3장 유라시아 동쪽 끝에서 생각하다
세계를 돋보이게 할 향신료
럭셔리란 무엇인가
클래식과 모던
일본 호텔은 왜 유럽 클래식인가
신들러하우스
밖에서 보는 시선

제4장 일본의 럭셔리를 생각하다
자연을 두려워하는 자세
안과 밖의 소통
현관과 바닥의 전환
안식의 형태
공간의 다의성
수직과 수평
모서리와 테두리–다다미, 맹장지, 장지문
모서리와 테두리–소재의 경계, 기술의 경계
물과 온천–화산열도의 축복
페터 춤토르의 발스온천
있는 그대로의 온천
빛나는 수면
습원과 강
만과 수평선
살아 있는 초목을 놓다
돌을 두다
청소

제5장 이동을 디자인하다
의식주 그리고 행
소형 비행기
자율 주행차
철도의 편안함
페리
세토우치디자인회의

저공비행을 마치며

하라 켄야

1958년생. 디자이너, 일본디자인센터 대표이자 무사시노미술대학교 교수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영향을 끼친 〈RE-DESIGN – 일상의 21세기〉전을 비롯해 〈JAPAN CAR – 포화한 세계를 위한 디자인〉 〈HOUSE VISION〉 등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는 전시회를 전개한다. 나가노올림픽 개폐막식 프로그램, 아이치박람회에서는 일본 문화에 깊게 뿌리 내린 디자인을 실천했다. 2002년부터 무인양품 아트디렉터를 맡았으며, 마쓰야긴자, 모리빌딩, 쓰타야서점, 긴자 식스, 미키모토, 야마토운수, 중국 샤오미의 VI 디자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2008–2009년에 베이징, 상하이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6년 ‘밀라노가구박람회’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브란치와 〈신 선사시대 – 100개의 동사(新·先史時代 – 一〇〇の動詞)〉전을 개최해 인류사를 도구와 욕망의 공진화로서 제시했다. 또 외무성 〈JAPAN HOUSE〉에서 종합 프로듀서를 맡아 일본 문화를 미래 자원으로 삼는 일에 주력한다. 2019년에 웹사이트 「저공비행 – High Resolution Tour」를 시작해 독자적인 시점으로 일본을 소개하면서 관광 분야에 새로운 차원의 접근을 시도한다. 지은 책으로는 『디자인의 디자인』 『백』 『내일의 디자인』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등이 있다.

서하나

건축을 공부하고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하다가 직접 디자인하기보다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깨달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외어전문학교에서 일한통번역 과정을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언어도 디자인이라고 여기면서, 일한 번역가와 출판 편집자를 오가며 책을 기획하고 만든다. 『노상관찰학 입문』 『초예술 토머슨』 『저공비행』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과 《d design travel》 가나가와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