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디자인하는가
오늘의 생활환경은 급격한 산업 구조의 변화와 정보 기술의 혁명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수없이 많은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고 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디자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사용하기 쉬운 정보 기기와 생활용품, 쾌적한 직장과 주거 환경, 안전한 제품, 나아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고령화와 산업 재해 등에 따른 장애자를 위한 환경, 작업장의 재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 등 실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새로운 디자인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사용자인 인간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찾고 바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어나 생을 마칠 때까지 가정이나 직장 또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건 일상 생활환경에서 접하는 모든 대상물과 사용자의 바람직한 합리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해결해 주는 한 분야로 저자는 에르고디자인(ergodesign)을 제안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열심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어떻게 사용할까?’를 별로 생각해 오지 않았다. 물건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의미를 갖는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에르고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만드는 디자인’만이 아니고 ‘사용하는 디자인’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의 생리적, 심리적 기능이나 특성의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소비자의 편의나 건강, 안전과 만족감을 추구하는 디자인을 모두 에르고디자인의 범주에 둔다.
에르고디자인 - 사용자 인간의 특성을 생각한다
에르고디자인은 종합 과학으로서 휴먼 팩터(human factors)나 에르고노믹스(ergonomics)라는 명칭으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원론적 연구 결과 대부분이 하드웨어적이고 오래된 자료들이라, 급변하는 오늘날의 생활환경에서 발생하는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기 어려워 디자이너들에게 외면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국내 대학의 경우 강좌가 ‘인간공학’이라는 명칭으로 유지되고 있거나 유사 강좌인 ‘유니버설 디자인’ 또는 ‘인간과 디자인’ 등으로 변경하여 개설되어 있다.
이 책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현장에서 일하는 제품, 자동차, 가구, 실내, 건축, 시각, 포장, 공공, 패션 디자이너 등과 엔지니어, 그리고 기업 CEO를 비롯하여 기획, 생산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이들, 나아가 일반인들도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엮었다. 인간 특성의 기본 원리를 안내한다는 생각으로 감각과 인지 능력, 신체 능력, 인간-기계 시스템과 인터페이스, 인터랙션, 감성, 인지, 유니버설 디자인을 아울러 다루고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사례로 제시했으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추세에 맞춰 고령자와 신체장애자를 위한 디자인을 다루었다. 또한 인간의 생존, 건강, 삶의 질 향상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기에 주방, 화장실, 헬스케어를 제시하였다.
저자는 디자인 분야가 당장의 디자인 프로젝트 수행과 경제적 이해 관계로 디자인 기초 연구에 거의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한다. 이 책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저자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좌를 이끌어 오면서 갖게 된 에르고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절실한 필요성 인식에서 나온 산물이다. 사람을 배려한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자료집으로서 에르고디자인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생각하게 하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