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진짜 최종)REAL.eps만 열두 번째
“내가 다 때려 치고 만다!”오늘도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킨다
『어쩌다 디자인』은 열여덟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예쁘게 해주세요」「이거랑 똑같이 해주세요」「살짝만 고쳐주세요」「이 느낌이 아닌데요」 등 클라이언트의 과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서 시작되는 모든 글은, 지은이가 이 요구를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그러면서 디자인이란 무엇이고 디자이너가 ‘진짜 ’해야 하는 책무가 무엇인지까지 솔직하고 일상적인 어조로 서술되어 있다. 디자이너라면 어떤 상황인지 척 알아듣고 때로는 울화통이 터질 수 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이게 뭐가 큰 문제지?”라고 갸우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읽다 보면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직종은 다르지만 상사나 협력업체 등의 무리한 요구에 고민했던 경험을 자연스럽게 겹쳐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상사나 협력업체 등의 무리한 요구에 어떻게 현실적이고 지혜롭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 저자의 경험을 보면서 참고도 하고, 각자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어쩌다 디자인』에는 지은이의 하소연만 담긴 건 아니다.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디자이너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등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제시되어 있다. 각 제목과 한 컷 일러스트레이션은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도출되도록 이끈다. 결과 역시 각 글 말미에 촌철살인의 한 줄 코멘트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정리되어 있다. 재치 있는 그림으로 사랑받는 최진영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도 편안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디자인이 이런 것인 줄
디자인은 기업의 상업적인 이익을 높이고, 제품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때문에 디자인은 제품이나 해당 대상에 심미적 기능을 부가한다고 여겨진다. 예쁜 디자인을 요구하고, 디자이너가 그림을 잘 그리고 포토숍을 잘 다루어야 하며, 아이디어가 톡톡 튀어야 하고, 패스트폴로어의 성공담을 좇아야 한다는 등 디자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은 이런 관점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업 디자이너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런 오해인데, 이는 비단 클라이언트의 문제만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문제이기도 하다. 비단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 상황에는 해당 직무에 경험이 없는 상사나 협력자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있겠지만, 초년생인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직무에 대한 오해가 만들어낸 것도 많다. 『어쩌다 디자인』이 자신의 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고, 자신의 역할과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깨달아 결국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 디자이너의 경험담이지만, 디자이너건 디자이너가 아니건 그의 경험과 생각 과정은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찾고 싶은 모두에게 유효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