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 모든 때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자연을 통해 발굴한 ‘천부적 아름다움’의 기록
『이십사절기 빛 그림』의 저자 장응복은 서울에서 태어나 많은 시간을 도심에서 활동했다. 도시 환경 속에서 바쁘게 보내며 소모된 몸과 마음은 결국 자연으로 향했다. 거처를 점점 외곽으로 옮겨갈수록 “삶은 느리게 변해갔다.” 이동할 때 자가용을 이용하는 대신 천천히 걸었다. 24절기와 특히 밀접한 농부의 삶을 배우며 두 손으로 흙을 만졌다. 우주의 생명력과 계절마다 변화하는 빛을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전에 지나쳤던 자연의 형상을 새로이 조우하고 경이로움을 느낀 건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을 발견하면 아침 운동길에도 여행 중에도 사진을 찍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자연 색상판」이 바로 장응복이 자연에서 발굴한 ‘천부적인 아름다움’의 산물이다.
자연 속의 색은 빛의 파장에 따라 우리 눈에 다르게 감지된다. 장응복의 색상판을 보면 그가 계절마다, 절기마다, 모든 날의 모든 순간에 얼마나 예민하게 빛을 감지하고자 했는지 보인다. 변화에 민감한 성질은 그가 트렌드세터로 분주하게 일하던 시절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계절도 절기도 우주의 흐름에 따라 돌고 도는 현상임을 생각하면, 어쩌면 더 광대한 트렌드를 본인의 작업에 포용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서문 「우주가 만들어내는 24절기 자연 빛깔과 무늬」에 붙은 소제목 ‘트렌드 이후의 트렌드’는 디자인 평론가 최범의 추천사 「무늬 ‘이후’의 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차용한 표현으로, 실제로 장응복은 자연을 통해 트렌드 이후의 트렌드로 나아갔다. 일견 트렌드에서 자유롭게 보일 만큼 트렌드를 초월함으로써 작품 세계를 확장한 것이다.
특히 24절기와 장응복의 작업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절기가 ‘자연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리듬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흐름은 그가 오래 해온 패턴 작업의 형식과 일치한다. “형식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자유로움을 부여한다. 그것은 그저 무한한 자유로움보다 매력 있다.” 장응복은 형식이 주는 즐거움과 형식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모두 이해하고 작업을 통해 표현해왔다. 그리고 자연의 리듬과 패턴, 여기에 우리 생활을 연결하는 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디자인을 실천하고자 했다. 이 책은 그동안 장응복이 거듭해온 시도와 실천의 총체다.
자연의 빛을 통해 수집한 색과 무늬를 함께 배치하고 이 모두를 ‘빛 그림’으로 묶었다. 작업이 반영되는 물질은 흔히 텍스타일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의류, 침구, 소품류 등에 국한되지 않고 조명, 가구, 벽과 천장을 장식하는 인테리어까지 우리 생활을 이루는 여러 영역으로 점점 뻗어나간다. 각 절기 표지에는 장응복과 정기적으로 협업하며 신뢰 관계를 쌓아온 김동율 작가의 사진을 더했다. 색 및 무늬 작업과 수려한 자연 사진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책 전체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완성했다. 장응복은 작업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 삶을 풍요로이 충족시키고 생활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오길 바란다. 그런 염원을 반영한 작품으로 엮어낸 이 책은 그 자체로 ‘길상’을 가득 품은 사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