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빌딩이 높기만 한 건 아니다?
높이만큼 흥미로운 건축 이야기
도심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에 닿을 만큼 크고 높은 빌딩이 줄지어 있다. 그 중에서도 높이 300미터 이상인 건물을 뜻하는 ‘초고층 빌딩’은 도시 풍경뿐 아니라 사회문화와 경제 흐름까지 바꿔 놓는다. 황무지에 우뚝 선 빌딩 한 채가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기도 한다. 더 높이 오르고 싶은 인류의 바람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욕망으로 점철되어 결국 무너지고 마는 전설 속 탑과는 달리, 현시대 고층 빌딩은 구체적인 목적과 다양한 효용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도시를 둘러싼 환경을 진단하여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탄탄한 시공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물론, 기획 단계부터 친환경적인 요소를 고민하여 단지 도시 풍경을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가꾸는 데 일조한다. 자연 환기 비율이 80퍼센트에 이르는 독일 코메르츠방크타워의 환기 시스템이나, 녹지 대체 비율 1100퍼센트를 기록한 싱가포르 오아시아호텔의 하늘공원, 옛 선박 건조장 터를 재개발하는 프로젝트의 구심점이 된 스웨덴 터닝토르소의 복합단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사회와 구성원을 위해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는 일이 빌딩의 주요 과제이지만, 존재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건물도 있다. 뉴욕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와 런던의 30세인트메리액스처럼 비극적인 사건을 딛고 건립된 경우다.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재탄생한 공간에 하나둘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 도시와 사람 그리고 건축의 유기적인 관계가 한층 견고해진다. 결국 무너진 삶을 세우기 위해 건물도 다시 세워져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교차점
도시가 남긴 성실한 기록들
지은이 존 힐은 성실한 기록자이자 건축 리서처다. 그는 매일 자신의 레이더망에 걸린 건축물에 관한 자료를 모아 블로그에 공유한다. 이 책은 그의 기록 중에서도 도시설계와 건축, 건설,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한 세계 초고층 빌딩 46채에 관한 탐구 결과다. 건물의 외형과 내부적인 특징은 물론, 착공하여 완공되기까지의 과정, 매각이나 계약 분쟁이 일어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런 자료를 기반으로 지난 100년 동안 도시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초고층 빌딩이 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시공 과정과 건축 용어는 전문적인 영역이지만, 잘 요약된 정보와 간단한 수치, 정교한 일러스트가 건축과 무관한 독자에게도 재미와 영감을 준다.
역사와 문화를 담은 건축물
그리고 거장들의 향연
초고층 빌딩은 도시의 상징이다. 그런 만큼 건물을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지은이는 자연, 경제성, 기술, 심미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제시하며, 초고층 빌딩이 주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지켜보길 권한다. 그 저변에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이 있다. 이 책은 여러 도시를 넘나들며 저마다 개성 있는 자태로 시선을 압도하는 초고층 빌딩을 소개하는가 하면, 장 누벨과 렌조 피아노, 지오 폰티, 렘 콜하스, 단게 겐조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치열하게 작업하던 현장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박물관 사료들이 지난 역사와 문화를 대변한다면, 초고층 빌딩은 늘 입체적이고 생생한 존재로서 동시대 역사와 문화를 말한다. 이제 그 풍경을 직접 눈에 담아보자.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