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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폼: 브로큰 트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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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표면 아래 숨겨진 파열과 변주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
최철용의 《유니 폼: 브로큰 트윌》, 유니폼을 균열의 출발점으로 다시 읽다

이 책 『유니 폼(Uni Form)』은 패션 디자이너이자 현대미술 작가 최철용의 개인전 《유니 폼: 브로큰 트윌(Uni Form: Broken Twill)》(토탈미술관, 2025. 8. 28.–9. 28.)을 기록하고 확장한 전시 도록이다.

『유니 폼』은 ‘유니폼’이라는 제도적 형식을 해체하고, 그 틈에서 발생하는 균열과 저항의 언어를 탐구하는 최철용의 작업 세계를 집약한다. 전시장에서 선보였던 대형 회화, 직조 패턴 연작, 신체와 사회 구조의 긴장을 다룬 작업들이 이미지와 글로 충실히 담겼으며, 이로써 이 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예술적·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자리 잡는다.

전시 제목 유니 폼(uni form)은 단어 ‘uniform’을 ‘uni(하나)’와 ‘form(형식)’으로 분리하여, 동일성과 규율 사이의 틈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도록은 이러한 개념을 이미지와 텍스트, 디자인 차원에서 이어받아 유니폼의 표면 아래 숨겨진 파열과 변주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탐구한다.

한편 본서에는 전시의 개념적 토대를 심화하는 미학자 하선규의 글(미학 이론)이 여러 편 실려 있다. 그의 글은 ‘브로큰 트윌(Broken Twill)’이라는 직조 기법을 사회적 규율과 제도의 은유로 확장하며, 균열과 변형이 발생하는 순간을 현대적 주체의 불안정성과 연결해 해석한다. 이 비평적 글들은 보는 이가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의 의미를 사유하게 만들며, 도록을 단순한 도큐멘테이션을 넘어선 ‘읽는 전시’로 탈바꿈시킨다.

책 속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대형 회화 〈기억의 파편이 새기는 푸른 상흔〉으로 유니콘, 권총, 우유 같은 상징적 이미지로 집단적 기억 및 개인적 상흔을 교차시키며 11미터 너비의 장대한 화면 위에 펼쳐 보인다. 그 외 〈질서의 농도〉 연작은 반복과 배열로 구축된 집단 이미지 속에서 개인의 흔적을 포착하며, 〈분절된 시선의 떨림: 굴절된 능직의 시학〉은 검정의 농도와 흔들리는 직조 패턴으로 유니폼이 지닌 이중적 성격을 드러낸다. 〈심연을 향한 은밀한 항해: 12개의 이야기〉는 얼룩, 군복, 퍼레이드 같은 모티프를 통해 개인의 예측 불가능한 일상이 집단적 규율에 맞서는 순간을 탐구한다.

이 책의 북디자인은 패션과 출판의 경계를 실험적으로 다뤘다. 패브릭 원단 위에 실크 인쇄된 라벨을 표지에 실제 미싱으로 봉제하여 부착하는 등 의복의 제작 방식을 출판물의 물리적 형식에 접목시켜보고자 했다. 이 물성은 ‘유니폼’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촉각적으로 구현하며, 책 자체를 전시의 연장선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오브제로 만든다.

『유니 폼』은 이처럼 텍스트, 이미지, 디자인이 긴밀하게 결합된 출판 실험을 통해 동일성과 질서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유니폼을 균열과 변주의 출발점으로 다시 성찰한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전시장에서의 체험을 되새김과 동시에 우리가 입는 의복과 살아가는 세계의 무늬 그리고 그 이면의 틈을 사유하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현재성에 대한 집착, 신화적 자연의 가상, 역사적 원천에 대한 성찰의 배제 ― 유니폼에 대한 의미 있는 탐색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이 세 가지 악마적 폐쇄성의 지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가 유니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이해의 ‘맹점들(blind points)’이다. 이들은 생산적 탐색의 시선을 가로막고, 비판적 사유의 폭과 깊이를 제한한다. 하지만 이들 맹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데, 여기서 다시금 벤야민의 예술철학이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하선규, 「최철용의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19세기 중반 이후 현대적 주체는 근본적으로 ‘선험적 고향 상실성’ 상태의 주체이다. 상대주의와 주관(심리)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 직면하여, 현대적 주체는 삶의 방향과 이상을 홀로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적 주체는 보헤미안 주체다. 현대적 주체에게 사회화의 욕망은 경제적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차별화의 욕망은, 현대적 주체가 유일무이한 개별자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스타일 또는 삶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욕망이다.

하선규, 「최철용의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유니폼은 기본적으로 통합의 상징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는 균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유니폼이 성공적으로 응집력을 산출하는 순간은 어떤 불연속성과 균열이 시작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통일된 외관이 무너지면서 충돌, 불연속, 저항이 분출하는 파열의 순간이 실현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유니폼을 연속과 불연속, 결정과 비결정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언어로 형상화할 수 있다. 최철용의 작업은 파편화되고 변형된 선, 형태, 패턴을 반복하여 차용하고 콜라주한다. 또한 시각적으로 파격적이며 강렬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질감과 색감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조형적 특징은 유니폼에 내재한 잠재적인 균열과 붕괴 가능성을 암시하는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선규, 「최철용의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브로큰 트윌은 열린 파격과 변주의 직조 기법이다. 그것은 새로운 중단과 변형을 긍정하는 조형적 문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철용의 작업에서 브로큰 트윌은 유니폼에 내재한 구조적 양가성의 징표이자 유물론적 매개의 기술적-감각적 고리 역할을 한다. 브로큰 트윌의 개입과 배치를 음미함으로써 감상자는 예술적 형식의 능동적인 힘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기만 없는 화해의 가능성과 미적 자유의 몸짓을 현시하는 예술 고유의 잠재성과 그 실현에 다름 아니다.

하선규, 「최철용의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유니폼은 나와 내가 짜여진 직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접면이다. 반복·안정·질서가 우리를 한 방향으로 세우는 동안, 사소한 얼룩 하나가 그 표면을 미세하게 틀어지게 한다. 나는 그 틈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얼룩은 오염이 아니라 생성—흰색과 탈색이 공존하는 작은 균열이며, 규율과 개인이 부딪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지점이다. 흐릿해지는 이미지는 기억의 방식이고, 선명해지는 텍스트는 현재의 주장을 형성한다. 목적 없이 흘러내리는 우유, 말 패턴에 덧그린 뿔로 탄생한 유니콘처럼, 기호는 일상 속에서 방향을 비틀며 새로운 신화를 만든다. “너는 나인가? 나는 우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사회적 몸’으로서의 유니폼, 그리고 그 표면에 남는 감각의 잔상에 관한 물음이다.

최철용, 「작가의 글」

균질하게 보이던 표면이 어떻게 다성(多聲)의 장으로 변하는지 묻는다. 얼룩은 균열의 은유가 아니라 제작의 방법이다. 패턴은 복종의 도구가 아니라 변형의 가능성이다. 유니폼을 통해 우리는 ‘우리’라는 집합의 윤곽을 만지며, 동시에 그 안에서 흔들리는 ‘나’의 경계를 듣는다. 관객이 이 작업들 앞에서 각자의 거리와 호흡을 찾을 때,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너는 나인가—나는 우리인가. 그리고 그 사이, 질서의 농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최철용, 「작가의 글」

차례

최철용의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하선규)

  1. [단상들] 낯선 병치, 중첩, 대비, 그 반미학적 효과 (하선규)
    질서의 농도
    심연을 향한 은밀한 항해: 12개의 이야기

  2. [단상들] 유니폼의 불확실한 인상학 (하선규)
    분절된 시선의 떨림: 굴절된 능직의 시학
    굴절된 능직의 시학

  3. [단상들] 캔버스 공간의 다층적-파격적 구축 (하선규)
    스케치들
    작가의 글
    리서치들

  4. [단상들] 헤겔의 유동하는 개념과 대도시 군중 (하선규)
    프로세스
    인터뷰

  5. [단상들] 분산된 개체성과 역사적 서사의 해체 (하선규)
    유니콘
    기억의 파편이 새기는 푸른 상흔

  6. [단상들] 유니폼과 신체현상학
    전시 공간 모형

Choi Chul-yong

Choi Chul-Yong studied Textile Art and Fashion Design at Hongik University and its graduate school and later explored the intersection of design and art at the Domus Academy in Milan. After working as a fashion designer and art director for European fashion brands such as Meltin’pot (Italy), Wrangler Blue Bell (Belgium), and Marteli (Italy), he returned to Korea in 2009 and launched his own brand, Cy Choi. Cy Choi has held 18 presentations in Paris, participated in Seoul Fashion Week 10 times, and won the Samsung Fashion Design Fund (SFDF) twice. Choi was named Fashion Designer of the Year by Arena in 2014 and recognized as a promising newcomer by Italian Vogue in 2010. Currently, he serves as a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Textile Art and Fashion Design at Hongik University and continues his role as the creative director of C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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