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발견한 건축과 삶에 대한 사유를 담은
한 건축가의 수도록(修道錄)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으로 유명한 우리시대 대표 건축가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승효상이 여행길에서 만난 건축과 그것이 이루는 삶의 풍경들을 기록한 인문 에세이이다. 건축가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다룬 이 책이 인문서인 이유는 이것이 전문적인 건축이야기나 여행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건축을 인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노력해 온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 따라서 건축을 굳이 장르로 구분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다. 그리고 삶의 실체를 그려야 하는 건축가에게 가장 유효한 건축 공부 방법이 바로 여행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여행의 견문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뿌리내리고 사는 집과 도시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건축과 건강한 도시인지를 함께 성찰하는 명상록이자, 실천을 고민하는 한 건축가의 수도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그간 여러 지면에 연재했던 글들과 이전의 기록들을 묶어서 새롭게 정리한 내용으로, 지금까지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설파해 온 승효상의 건축철학이 집약되어 있는 동시에 문필가로도 이름 높은 저자의 문학적 향취를 만날 수 있다. 간결하고 담담히 써내려 간 문장 안에 담긴 사유의 묵직함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종묘정전에서부터 르토로네 수도원까지 책의 안내를 따라 세계 각지의 건축을 여행한 후에 독자들은 실감하리라. 박노해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온 이 책의 제목처럼, 정말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가 잃어버린 건축과 도시의 가치,
삶의 진실함을 일깨우는 비움과 고독의 이야기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는 우리 삶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일깨워지고 확인될 수 있는 곳이며, 그것은 비움과 고독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과도한 물신의 탐욕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고독을 다시 찾아 이를 마주하고 우리의 근원을 다시 물을 수 있도록 비워진 곳, 그런 비움의 도시가 결국 우리의 존엄성을 지킨다.”
‘내 집 짓기’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 그와 관련한 책들도 많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 책은 집 한 채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논하거나 물질적 가치를 알려 주는 실용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서 다루는 건축에 관한 저자의 주요 관심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형의 삶’이다. 그것은 오래 전 저자가 스승인 건축가 김수근의 문하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건축을 찾아 방황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간 우리나라와 세계의 건축들을 찾으며 고민한 흔적이다.
600년 고도의 서울이 몇십 년 사이에 개발지상주의의 광풍에 휩싸여 서구의 도시이론으로 덧칠되고, 우리가 버린 선조들의 미학을 서양인들은 다시 예찬하는 황망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영혼이 거주할 수 있는 건축’이란 과연 무엇일까. 모든 부분이 중심인 까닭에 한 부분이 사라져도 지속 가능한 도시 페즈에서,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 우드랜드 공동묘지의 성서적 풍경에서, 역사의 기억을 안고 사라진 하르부르크의 기념탑 앞에서, 진정성 있는 공간의 지혜를 보여 준 금호동 달동네에서, 기품 있는 삶의 향내를 간직한 창덕궁 기오헌에서, 승효상은 이제 우리가 어떤 건축을 지향하고 어떤 도시에서 살아야 할지 담담하지만 안타까움을 담은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서시로 인용된 박노해 시인의 시처럼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들에는 아름다움과 지혜가 있다. 현재 내가 거주하는 집과 도시의 모습은 어떠하며,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 이제 답을 찾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