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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험, 나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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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조체와 고딕체의 원형을 디자인한 1세대 글꼴 디자이너 최정호의 유일한 저서

‘오늘날의 명조체와 고딕체의 원형을 만든 사람’ ‘출판계와 디자인계에서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이름’. 1957년 동아출판사체를 시작으로 삼화인쇄체, 동아일보제목체 등을 만들고, 일본 모리사와와 샤켄을 위한 한글 원도 제작에 참여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명조체와 고딕체를 만든 최정호. 그의 비전祕傳을 생전 유일하게 글로써 남긴 디자인 잡지 《꾸밈》의 연재 글을 한데 엮었다. 최정호가 디자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꾸밈》 인터뷰와 당시 《꾸밈》의 아트디렉터였던 안상수의 부탁으로 연재하게 된 여섯 편의 글은, 척박한 환경에서 노동집약적산업이라 할 수 있는 한글꼴 설계에 매진하며 깨우친 그의 한글 조형 이론을 그의 언어 그대로 보여준다.

편집자의 글

디자인 잡지 《꾸밈》의 아트디렉터 안상수와 최정호의 만남

《꾸밈》은 1977년에 건축가 문신규가 창간하고, 조각가 금누리가 초대 편집장을 맡은 격월간 디자인 전문지였다. “편집장 금누리와 전종대는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았다.”(『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안그라픽스, 2014)) 디자이너 안상수는 《꾸밈》의 아트디렉터로 합류하면서 당시 “신문로에 있는 (오늘날의 서울역사박물관 건너편) 진명출판사에 책상을 하나 놓고 일하고”(『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안그라픽스, 2014)) 있던 1세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찍이 최정호의 업적을 높이 여겼던 안상수는 최정호 선생에게 ‘평생 한글꼴을 만들어 쌓은 경험을 글로 자세하게 풀어주기’를 부탁했고, 이를 계기로 1978년부터 1979년까지 여섯 편에 걸쳐 《꾸밈》에 「나의 경험, 나의 시도」가 연재되었다.

한글꼴 멋지음에 대한 최정호의 비전祕傳

『나의 경험, 나의 시도』는 글꼴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다룬 이론이라기보다는 최정호가 활자 조판, 사진식자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자형 설계’의 방법론과 노하우를 담은 작업 노트에 가깝다. 최정호가 본격적으로 글꼴 디자인을 시작한 1955년은 6·25 전쟁 이후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성장하는 시기였다.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출판·인쇄업도 출판의 질을 끌어올릴 혁명을 도모했지만, 글꼴 개발을 맡은 최정호에게는 참고할 만한 서적도, 물어볼 스승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경험으로 답을 찾아야 했다. 책에는 그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한글꼴 디자인의 나름의 방법이 그가 직접 그린 도판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원문이 쓰인 1970년대는 글꼴 용어에 대한 논의와 정립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원문을 가능한 한 그대로 살리되, 최정호의 원도를 바탕으로 글꼴을 개발하고 온라인 최정호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 용어와의 차이를 정리하고 풀이를 더했다. 최정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글에 나열한 나의 경험은 그저 여러분의 새로 시도하는 작업의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어떤 경우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스스로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내 이야기를 참고해 어떤 문제를 제시하고 연구하면 좋은 글꼴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의 바람 그대로 오늘날의 독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책 속에서

그분.인터뷰를.마쳤을.때.그분께.제안을.드렸다..“선생님.쌓아오신.경험을.글로.꼭.써주세요..후학들에게.도움이.됩니다..한글꼴.멋지음에.대한.선생님의.비전祕傳을.남겨주십사”고.했다..(중략) 지금.보면.어색한.점도.많지만.그나마.그분의.지혜.경험을.이렇게나마.얻어놓은.것이.천만다행이다..(중략) 늘.웃음.띠며.반갑게.어린.친구로.대해주시던.그분이.그립다..

6쪽

한글이란 본디 세로쓰기 용도로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꼴은 각지고, 두텁고 조잡하였다. 한글 창제 후 한글은 식자층에서 소외되어 조선 궁중 여인들의 손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었다. 그 당시 유일한 필기도구인 붓으로 당시 풍습대로 내려쓰기에는 기하적 한글 모양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었고 붓놀림에 따라 흘림체로 변화했다. 이처럼 한글은 여성의 손으로 아름답게 다듬어져 오늘에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다듬어진 한글꼴이 곧 궁서체宮書体다. 나는 이 궁서체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고, 내가 설계한 한글 부리 계열 ‘명조체 ’는 이 궁서체 중 해서체를 내 나름대로 다듬은 것이다.

13쪽

명조체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 요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보았다. 본디 이를 디자인함에 있어 붓으로 그린 획Stroke의 특성을 최대로 반영해 부리를 그렸다. 명조체의 기본이 되는 부리의 특징을 간추려 보면 ‘첫줄기, 가로줄기, 둥근줄기, 기둥, 삐침, 내리점, 꺾임, 굴림, 이음보, 맺음’으로 구분할 수 있다.

29쪽

한글은 정체로 쓰면 장체로 보이는 단점이 있다. 글꼴은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은 글꼴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글꼴은 이렇듯 가독성이 좋아야 하며, 글자의 모든 변형은 원리 원칙을 이해한 뒤에 행하는 것이 현명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명조체도 현재는 많이 쓰이고 좋다고 하지만, 언젠가 도태되어야 할 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명조체가 절대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이 글을 디딤돌 삼아 한발 더 나아갔으면 한다.

45쪽

고딕체는 명조체의 필력과 필체를 응용한 것이다. (명조체의) 필력은 극도로 살리고 필체에서 보이는 부리와 돌기를 다 희생시킨 것이 고딕체이다. 그러므로 명조체와 필력은 같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가 있다. 고딕체의 목적은 같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고 다른 글꼴과 구분되어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획의 미적 형태를 희생시켰다. 그렇지만 도안 글씨(레터링)와는 다른 운치가 느껴져야 하며, 글꼴로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49쪽

지금 쓰고 있는 명조체는 엄밀히 얘기하면 명조체가 아니다. 명조라는 것은 한문 명조체의 이름을 붙인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구태여 명조체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지금 나와 있는 신명조체(*오늘날의 순명조 계열)일 것 같다. 신명조체는 정말 명조의 필체를 따온 것으로, 두 글꼴의 명칭이 뒤바뀐 것이다. 앞으로 누구든 계속 새로운 글꼴을 내겠지만, 그 글꼴의 명칭을 우리 나름대로 정확하게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66쪽

지금에 와서 궁서체는 많이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나는 당시에 각종 초대장, 청첩장, 시집 등에 사용할 것으로 궁서체를 만들었으나, 정부 시책에 의한 청첩장 배포 금지, 워낙 경제성이 낮은 시집을 목표로 해 많이 보급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중략) 궁서체란 글씨에 손을 댄 나로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개발하고, 그 인기도 장담했는데, 아직도 그리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다.

75쪽

차례

들어가며
일러두기

나의 경험, 나의 시도 1
《꾸밈》 11호, 1978년 8·9월

나의 경험, 나의 시도 2
《꾸밈》 16호, 1979년 3·4월

나의 경험, 나의 시도 3
《꾸밈》 17호, 1979년 5·6월

나의 경험, 나의 시도 4
《꾸밈》 18호, 1979년 7·8월

나의 경험, 나의 시도 5
《꾸밈》 19호, 1979년 8·9월

나의 경험, 나의 시도 6
《꾸밈》 20호, 1979년 10·11월

대화. 한글 자모의 증인 최정호
《꾸밈》 7호, 1978년 1·2월

최정호 연표

Choi Jeong-ho

A Pioneer of modern Korean type design and typeface research. He moved to Japan, where he worked at a printing company, mastering various printing techniques, and studied at Yodobashi Art Academy. In 1957, he developed the Dong-A Publishing Typeface, which received high acclaim. In the early 1970s, he collaborated with Japanese phototypesetting companies Shaken (寫硏) and Morisawa (モリサワ) to create Hangeul typefaces. In his later years, he focused on writing and researching the philosophy and principles of Hangul design. He developed several Hangeul body text typefaces and display typefaces, including Semyeongjo, Jungmyeongjo, Junggothic, Taegothic, and Gyeonchulgothic, as well as various stylized typefaces.

Ahn Sang-soo

Ahn Sang-soo is a graphic designer and typographer with a keen interest in Korean visual culture. He studied in the Visual Communication Design Department at Hongik University, where he also completed his graduate studies. A former professor at his alma mater, he took early retirement in 2012 to establish the Paju Typography Institute, where he currently serves as the president, also known as ‘Nalgae.’ In 2007, he received the Gutenberg Prize from the city of Leipzig, Germany. He is also a visiting professor at the Central Academy of Fine Arts (CAFA) in Beijing and a member of the 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 (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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