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퍼센트에 거는 숭숭숭숭, 북슬북슬, 까칠까칠한 건축들
일반적인 설계 사무소는 소장이 자신의 비전을 명백하게 정의된 언어로 스태프에게 전달하는데 구마 겐고는 이런 일방통행 방식의 건축을 하지 않는다. 그는 스태프들에게 모호한 메시지를 던진 뒤 나오는 미묘하게 다른 응답을 통해 건축을 만든다. 북슬북슬, 거슬거슬, 푹신푹신 등의 모호한 언어를 던지는 것이다. 이때 나오는 이야기의 95퍼센트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중 5퍼센트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만든다. 구마 겐고는 물질이란 “전혀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으며, 건축적 경험을 만들어내거나 끌어낸다는 점에서 지극히 주관적이고 영적인 날것”이라고 말한다. [의성어 의태어 건축]은 경험과 관계성을 중시하는 그의 생각이 어떻게 건축물로 구현되는지 보여준다. 랜케이블과 아크릴 폐자재를 녹여 만들어 형태를 없애고 물질과 색채만 남긴 북슬북슬한 음식점 뎃장(てっちゃん), 건축이 숲에 어우러지도록 격자형 그물망 세 개를 만들어 그 위에 흙을 붙여 까칠까칠함을 보여준 그물망/흙(Mesh/Earth), 목조 각재를 짜 맞춰서 만든 삐죽삐죽한 서니힐즈 재팬(Sunny Hills Japan) 등의 건축물이 가득 수록되어 있다.
입자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
구마 겐고는 입자로 세계를 인식한다. 정원이나 건축은 입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데서 완전히 동등하다. 그가 입자로 환경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의성어와 의태어다. 이 책에는 흔히 봐왔던 철, 콘크리트, 유리 재료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물체와 공간과 인간을 입자로 인식하고, 그 입자를 살아나게 하기 위해 크기와 속도, 틈과 질감을 깊이 고민한 재료가 등장한다. “투명한 소재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공간에 투명성을 줄 수 있을까?” “크고 무거운 돌이나 콘크리트에 팔랑팔랑함을 주려면 어떻게 할까?” 건축가의 질문은 특수 종이, 타일, 기와, 대오리, 대나무, 천, 에나멜 글라스, 띠, 나무 막대기, 그물망, 랜케이블 등의 소재의 사용과 정형을 벗어난 자유로운 모양의 건축물로 이어진다. 건축가가 위에서 조작하는 대상으로 건축을 보는 게 아니라 건축과 인간을 같은 위치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건축가에서 사용자까지 아래로 내려오는 건축이 아닌, 건축가와 사용자가 동등하게 건축 안에서 노닌다. 이 책은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