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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디자인 평론가 최범이 읽어주는 고전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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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디자인 고전인가
우리 시대의 창조자를 위한 고전이라는 깊은 우물 속 창조의 수원지로

세 권의 평론집을 통해 한국 디자인의 특수성에 주목하고 정체성과 방향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온 디자인 평론가 최범의 새로운 책이다. 상상마당에서 진행한 ‘디자인 고전 읽기’ 강좌를 바탕으로 쓴 이 책에는 열 권의 고전이 등장한다. 이 고전들은 디자인과 예술과 인문학 분야를 아우르며, 바로 ‘그때’,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창조성을 발휘해야 할 때 읽었어야 했던 책들이다. 지은이는 고전 속에서 현재의 담론을 자연스럽게 꺼내며 디자인을 넘어 우리의 현실을 함께 생각하고 정확히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끈다. 고전을 통해 생산된 의미 있는 텍스트를 찾아내고 하나하나 꿰어나갈 때, 미래의 디자인 문화를 풍성하게 할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줄 것이다.

편집자의 글

말이 없는 당신에게

지금까지 한국 디자인은 서양 것을 따라 하거나 제도권 아래 있거나 경제 개발 과정에서 생겨난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시각적 기술만 어설프게 흉내 내고 그들의 사상과 이론은 깊이 알지 못한다. 한국 디자인에 사상과 이론, 즉 ‘말’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우리가 유독 의문이 적고 말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창조는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의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고전을 통해 우리의 말을 회복시켜주고, 로고스(logos) 즉 논리와 이성을 갖게 해주며, 회복된 말 속에서 주체적 질문을 꺼낼 원동력을 만들어준다.

아돌프 로스에서 김홍식까지

이 책에서 이르는 고전의 범주는 모던 디자인이 태동한 20세기의 텍스트, 그중에서도 이론과 사상을 지향하는 책들이다. ‘망치를 든 건축가’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건축』에서 시작해 근대 동양의 탄생과 디자인 헤테로토피아를 거쳐 포스트모던 세계까지. 특히 마지막 한 권인 김홍식의 『민족건축론』은 이 책의 유일한 한국 텍스트로 고전과 현재 우리의 삶을 한층 가까이 연관시켜준다. 권말에는 야나기와 파파넥에 관한 담론을 보충하며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고 현재까지 유효한 문제의식을 다시금 제시한다. 이렇게 지은이는 모던 디자인사를 넓게 펼치며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고, 고전을 무조건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과 재생의 재료로 삼는다.

창조적 주체의 탄생

시대의 결을 거슬러 올라 의미 있는 텍스트를 찾아내고 그로 인해 깊어진 새로운 눈으로 세상과 디자인을 보는 것에서 창조성이 태어난다. 역사 속의 말과 내 안의 말이 만나 창조적 언어, ‘나’의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고전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그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주체적 창조에서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아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고전을 읽고 싶지만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아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거나 창조적 사고의 근원을 찾는 일반 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책 속에서

한국 디자인에 언어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미술수출’ 같은 말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인문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저 국가주의적인 개발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디자인이 서양에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서양 디자인을 제대로 공부한 것 같지도 않다. 디자인의 시각적 기술은 어설프게 흉내 내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사상과 이론은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한국 디자인계가 윌리엄 모리스와 바우하우스에 관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7–8쪽,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에서

로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나중의 주인공들을 위해 사전에 장애물을 제거하는 악역을 맡은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주공부대가 전진하기 전, 미리 적이 설치한 지뢰를 파괴하는 돌격공병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던 디자인이라는 ‘재개발 사업’을 위해 장식이라는 낡은 건물을 때려 부수고자 투입된 용역 깡패에 그를 비긴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25–26쪽, 「오만과 편견 또는 한 전투적 모더니스트의 선전포고」에서

모던 디자인은 유토피아를 꿈꾼 디자인이었고 디자인을 통한 유토피아의 꿈이었다. 혁명적 이념이 없는 모던 디자인은 사실 모던 디자인이 아니라 그냥 모던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영국의 모던 디자인은 모던 스타일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이념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실리뿐이다. 디자인에서 실리는 경제다. 그것은 국민경제거나 기업경제다. 대륙의 디자인이 칼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했다면 영국 디자인은 애덤 스미스를 호출한다.

56–57쪽,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모던 디자인의 변용」에서

빛은 어둠을 뚫고 나온 문명의 상징이며 신의 선물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다니자키는 빛의 문명을 상대화하고 그 반대편에 어둠의 문명을 위치시키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동양문명과 동일시하면서까지. 왜?

79–80쪽, 「빛의 문명과 동양적인 것의 운명」에서

민예란 민중 공예의 준말로 야나기가 만들어낸 말이다. 물론 민예라는 개념은 야나기가 조선 예술로부터 받은 정체불명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지만, 그의 미학적 탐구는 민예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야나기의 민예론은 마침내 일종의 문명론이라 할 수 있는 공예 문화론으로 발전하고 최종적으로는 종교론이라 할 불교미학으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95쪽, 「공예를 통한 미의 왕국, 동양적 유토피아의 꿈」에서

우리는 통상 키치를 디자인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환경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 공식적인 발언권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 디자인인지는 몰라도, 정작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키치가 아닐까. 그러면 왜 키치는 현대 디자인의 담론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뒷골목을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121쪽, 「항상 키치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디자인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에서

파파넥은 소비사회의 현실을 현실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가짜 현실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현실은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존재해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게오르그 헤겔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역시 존재하는 현실이 이성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것만이 존재해야 할 현실이라는 의미다. 오로지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일 수 있다!

159쪽, 「대안적 디자인의 복음서인가, 모던 디자인의 묵시록인가」에서

한국의 1980년대는 ‘변혁의 시대’였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군사 정권의 교체기를 맞아 민주화 세력의 거센 저항이 일어났고 사회 각 부문에서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쳤다. (…) 그 한 가운데에 김홍식이 있었다. 그가 남긴 이 한 권의 책은 당시 민족적․민중적 건축 운동의 문제의식을,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195쪽, 「민중적 관점에서 본 건축의 문제」에서

차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

왜 디자인 고전인가

1. 모던 디자인의 계보학
오만과 편견 또는 한 전투적 모더니스트의 선전포고
–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
디자인사의 출발, 모던 디자인의 계보학
– 니콜라우스 페브스너의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모던 디자인의 변용
– 허버트 리드의 『디자인론』

2. 동양적인 것의 탄생
빛의 문명과 동양적인 것의 운명
–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공예를 통한 미의 왕국, 동양적 유토피아의 꿈
–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

3. 디자인 헤테로토피아
항상 키치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디자인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 아브람 몰의 『키치란 무엇인가』
디자인사가 사회사를 만났을 때
– 에이드리언 포티의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4. 포스트모던 파노라마
대안적 디자인의 복음서인가, 모던 디자인의 묵시록인가
–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기호가 된 디자인, 정치경제학을 완성하다
–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민중적 관점에서 본 건축의 문제
– 김홍식의 『민족건축론』

더하는 글
주석
원전 초판 정보
도움 주신 분들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의 편집인을 역임했다. 디자인을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 『공예를 생각한다』 『최 범의 서양 디자인사』 『한국 디자인과 문명의 전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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