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우미관에서 서울의 예술의전당까지
13개 극장, 그곳에서 펼쳐진 예술과 시대의 기록
지난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그중 6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콘텐츠를 향한 국내외의 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오늘날 K-뮤지컬, K-오페라, K-팝, K-클래식을 비롯한 K-컬처와 공연예술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상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137쪽) 그 뿌리는 과거의 극장과 무대에 닿아 있다.
『극장사회』는 근대에서 현대까지,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극장 13곳을 통해 예술과 사회, 그리고 감정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인문학, 문학, 역사학을 연구하는 5인의 저자는 원각사, 단성사, 우미관, 권상장, 동양극장, 명동예술극장, 국립극장, 종로 3가와 충무로, 연우소극장, 난타극장,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의전당을 무대로 각 극장의 서사를 써내려간다. 판소리, 국극,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토양이 되어준 극장의 역할, 시대의 명암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 예인들이 펼친 무대와 작품, 관객과 호흡하던 현장의 기억까지. 극장을 둘러싼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장에 모여 울고 웃은 시간들,
생생한 일화와 자료 그리고 관객의 서사로 엮은 공연예술사
이 책은 실제 일화와 문헌, 사진·그림 등의 시각 자료를 통해 극장이 축적한 시간을 재연한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활보하던 우미관, 판소리를 재해석한 여성 창극단,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경성 권번의 기생, 조선예술의 갈망과 자존심의 현현이 된 최승희, 〈춘향전〉을 보기 위해 영사실까지 들어찬 관객들, 지하 무대에서 극예술을 이어가는 연우무대, 예술의전당에서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시민 등 현장감 있는 장면들을 통해 극장의 의미와 역사를 탐색한다. 나아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공동의 경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현실의 단면 위에서 포착하며, 희노애락으로 대표되는 한국 공연예술의 정서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각자의 삶을 살다 온 사람들이 무대 위 타인의 감정과 마주치고 객석 아래서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 그 공간은 ‘하나의 장소’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겼다고 생각되면 그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다. 더욱이 그 ‘순간’의 경험이 혼자만의 절실한 고독이 아니라, 객석에 앉은 모두에게 공유되는 것일 때, 감정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될 수도 있다. (…) 극장사회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창출하는 감정의 연대가 만들어온 사회의 역사에 주목한다.”(8쪽)
무대 뒤 또 다른 무대, 세계를 사로잡은 이야기의 힘
한편 이 책은 극장을 논할 때 흔히 비켜 가던 관객에 주목하며 또 다른 극장사를 써낸다. 건물, 배우, 흥행, 수익 중심이 되는 통상의 서술로 담아낼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경험으로 극장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극장을 스쳐간 관객의 시간을 복원함으로써, 극장이란 공간은 한층 입체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이처럼 『극장사회』는 완성된 무대 너머, 그것을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것들에 주목한다. 연출가는 텍스트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하고, 배우는 타인의 삶과 자신을 겹쳐놓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무대감독은 조명과 음향의 흐름을 몸으로 기억하고, 의상팀은 바느질로 캐릭터를 빚어낸다. 이 책은 화려한 예술적 성취 뒤에서 극장을 받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순간들을 함께 기록한다. 공연예술을 무대 위 결과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극장이라는 공간을 이루는 작은 우주 전체를 들여다본다. 무대 뒤편의 광경을 따라가며 많은 이들이 찾는 이야기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