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스러운 소비와 개발에서, 공생을 통한 번성으로
지금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냉장고는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해주고, 에어컨은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보내준다. 도로망의 발달은 거리의 장벽을 없애주었고, 누구나 돈만 내면 최고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료와 농약이 좋아져 농업 생산량이 급증한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집에서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 경제 성장의 덕분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걸까?
우리의 삶은 소비와 직결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소비의 결과물인 수많은 공산품에 둘러싸여 있다. 회사나 학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외출이라도 한다면 소비의 패턴은 극적으로 상승한다. 입고 있는 옷부터 이동수단, 음료, 식품 어느 하나 소비가 아닌 것이 없다. 이런 소비는 단순히 물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지구 자체를 소비하고 있다.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삼림을 소비하고 있다. 치수 사업을 한다면서 빗물을 소비하고 있다. 소비는 활용이 아니다. 활용은 소모되지 않고 되살림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하지만 소비는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소모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비 생활을 이어간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무한한 성장을 핑계로 자연을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경제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디자이너이자 철학자이자 작가인 존 타카라는 분명한 어조로 ‘있다’고 답한다. 이 책에서 타카라는 이미 세계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대안들을 찾아 떠났던 여행의 결과를 소개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수많은 공동체가 어떻게 밑바닥부터 대안 경제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설명한다.
수박부터 부엔비비르까지, 살아 있는 시스템을 만나다
델리와 런던, 캘리포니아와 발리, 상파울루와 서울을 종횡무진하며 타카라는 토양을 복구하고 하천을 지키는 사람들, 포장도로를 벗겨내고 주택을 공유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을 만난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이들 각각은 자신이 살아가는 다양한 환경에 어울리는 최적의 방식으로 대안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미래의 디자이너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개발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번성’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사원이 마을의 물을 관리한다. 이곳 계단식 논의 수계 시스템을 수박subaks이라고 하는데, 마을의 사원이 중심이 되어 관리한다. 사원은 지역의 수계를 교란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마을의 논밭에 물을 댄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혁신적인 전기자전거 시스템이 나타났다. 코모바일Komobile이라는 작은 회사가 자전거로 이동하려고 할 때 인체에 필요한 영양 에너지의 양을 계산해주는 앱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전거라는 개념을 넘어 도시의 시간과 공간을 재배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들은 화물과 운전자의 질량을 포함한 자전거의 질량에 대한 정보, 도로의 경사, 우회로, 맞바람 데이터를 결합해 제공한다. 이런 작업은 자전거의 활용을 늘려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시애틀에 사는 예술가이자 생태 디자이너인 세라 베르크만은 도시의 가로를 따라 1마일 길이의 녹색 재배 공간을 만들었다. 도시의 양 끝에 있는 두 녹색 공간 사이를 통로로 연결한 것이다. 그 결과 멀리 떨어진 녹지를 연결하여 꽃가루받이 생물이 머물고 수분 활동을 하기 좋은 공간이 된다. 이런 식으로 영국에는 ‘꿀벌 도로’를 만드는 전국 규모의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도 했다.
2009년 개정된 에콰도르의 새 헌법에는 부엔비비르Buen Vivir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공동체 중심적이고, 생태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상생활 조직 양식을 일컫는다. 서구의 개념과 달리 부엔비비르의 공동체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문명의 끝과 탄생, 그 위대한 전환은 작은 실천의 힘에서
타카라가 소개하는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경제가 사실상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보여주는 명랑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이 책은 물건과 화폐, 끝없는 성장 대신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적인 실천을 말한다. 이런 새로운 경제 안에서 성장이란 토양과 생물 다양성, 수계가 더 건강해지고 지역사회의 복원력이 더 풍부해지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경제의 핵심 가치는 추출과 쇠락이 아니라 ‘관리’와 ‘건강’이다. 타카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활동하는 여러 문화권의 예술가들에게서도 영감을 얻었다. 이들의 새로운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면 부의 궁극적인 척도는 화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스템의 건강이고, 노동은 생존만이 아니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이런 조용하지만 광범위한 변화는 우리 서로 간의 그리고 지역 생태계와의 새로운 관계 맺음의 신호라고 타카라는 말한다. 큰 그림을 바꾸는 작은 실천의 힘에서 경이를 느끼는 그는 현재 지구에서는 위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것은 한 문명의 끝이지만 또 다른 문명의 탄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