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치홀트, 책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실무와 철학을 묻고 답하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타이포그래퍼이자 펭귄북스의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얀 치홀트(Jan Tschichold)가 책의 만듦새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철학을 밝힌 한국어판 『책의 형태와 타이포그래피에 관하여』가 출간되었다.
다소 긴 이 책의 원제는 ‘책의 형태와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질문을 위해 선별한 논고들’로, 193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스위스와 독일의 다양한 그래픽 산업 전문지에 소개된 얀 치홀트의 글 스물다섯 편을 모은 것이다. 책 디자인에 대한 실무 지식은 물론 좋은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인지, 타이포그래퍼가 가져야 할 자세와 철학에 대한 얀 치홀트의 생각을 담고 있다. 당시에는 조판을 주제로 조판가와 인쇄가, 제작자, 제본가를 책의 주 독자로 상정하고 쓴 글이지만,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기에 오늘날에 와서도 책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이나 현직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오늘날의 인쇄나 조판 기술은 얀 치홀트의 시대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이나 주장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책의 가치와 타이포그래피의 기본 지식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얀 치홀트는 새롭고 획기적이라는 명목으로 책과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을 해치는 시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는 전통적인 책의 판형과 조판 방식, 인쇄 기술, 타이포그래피가 책에 담긴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최적의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얀 치홀트가 남긴 수많은 글 중에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75년 바르크호이저에서 발행된 독일어 원서( 『Ausgewählte Aufsätze über die Fragen der Gestalt des Buches und der Typographi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한국어판에서는 1991년에 출간된 영문판(『 The Form of the Book 』)에서 빠진 부분까지 모두 복원해 거의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번역했으며, 얀 치홀트의 직설적이고 견고한 문투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역자 안진수는 현재 바젤 디자인예술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 전공 수업과 콘셉트 수업을 담당하는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로서, 책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소 난해하거나 해석이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주석을 달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더 쉽고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같은 대학에서 타입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분야 교수로 재직 중인 필립 슈탐(Philipp Stamm )의 글도 얀 치홀트를 좀 더 알아가는 데, 그리고 이 책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