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1가구 1주택 이후의 삶을 설계할 때
고립된 밀실에서 연결된 집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집의 형태는 너무나 익숙하다. 한 가구가 한 채의 주택에 살고, 내부는 가족 구성원만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철제 현관문은 확실한 경계선이 되고, 각 가정은 철저히 독립된 단위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런 주거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202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은 『탈주택』을 통해 ‘1가구 1주택’이라는 현대 주택 형식이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구조적 산물일 뿐, 절대적 이상향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량 공급된 노동자용 주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 주거 모델은 국가와 산업자본가가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의 일부였으며, 오롯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에 집중되었다. 남성은 근무지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에 머무르며 가사를 도맡는다는 분업 체제하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적합한 환경으로 고안된 것이다. 이렇게 흩어지지 않고 한 주택 안에 집중된 균일한 노동력은 제각각이지 않은 균일한 생산력과 그대로 연결되며, 직접적으로는 산업자본가가 취하는 이윤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노동의 형태도 가족의 형태도 변화했다. 핵가족이 중심인 주택 모델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고립과 이웃 간 단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는 기존 주거 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1가구 1주택’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적 주거 모델을 제안한다. 제목 그대로, 기존 주택 형식을 탈피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끄는 건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라는 착각
지역사회는 점점 더 단절되고 공동체는 사라져 간다. 이웃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각자의 집에서 일어난 문제는 철저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같은 이웃 갈등은 고조되지만 정작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야마모토는 이러한 단절이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건축과 주거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오늘날 주택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이 구조는 사생활 보호를 넘어, 이웃과의 관계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고 만다.
두 저자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라는 더 큰 틀 안에서 살아가며 이를 회복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란 단순히 친목을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는 이웃 관계가 아니다. 각 가구가 지역 경제와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핵심이다. 나카는 “주택이 경제와 분리된 한, 진정한 공동체는 형성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주택을 그저 소비하거나 잠만 자는 장소로 전락시키지 않고, 공동체의 본질과도 같은 ‘경제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을 맞이하는 현대 사랑방, 시키이(閾)
야마모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시키이는 일본어로 ‘문턱’이라는 뜻이지만, 한 발짝으로 넘을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택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중간 공간이다.
과거 한국의 사랑방처럼 시키이는 사적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외부를 향해 개방된 장소다. 전통 한옥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었으며,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러나 현대 주택에서는 이러한 기능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문이 닫혀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외부를 향해 개방하고 주택을 공유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방같이 사적 공간 안에 공적 공간을 마련해 주거 공간이 완전히 폐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웃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시키이는 그저 응접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적 장치다. 오늘날 주택이 철저히 개인화된 생활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면, 시키이는 외부 세계를 주택 안으로 끌어들이며 관계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공간 이상의 관계를 설계하는 건축가
『탈주택』은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안하는 동시에, 공간을 넘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거듭 질문하고 실험한다. 건축가는 물리적인 형태만을 설계하지 않는다. 건축물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회의 구조가 변화할 수 있다. 더 이상 ‘1가구 1주택’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 책은 건축가, 도시계획가뿐 아니라 공간과 공동체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