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脫住宅: 「小さな経済圈」を設計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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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라는 신화, 사생활이라는 감옥
어쩌면 우리는 1가구 1주택에 갇혀버린 건 아닐까?

“미래는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2024 프리츠커상 수상자 야마모토 리켄이 그린 이웃의 풍경

2024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이 야마모토 리켄에게 돌아갔다. 톰 프리츠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연구해 온 그를 “단순히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새로운 건축 언어를 제안한다.”라고 평했다.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가 함께 쓴 『탈주택』은 산업혁명 이후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1가구 1주택’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며, 건축을 통해 새로운 주거 방식을 모색하는 책이다. 두 건축가는 단순히 더 나은 주택이 아니라 건축으로 삶의 방식, 나아가 공동체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1부에서 야마모토는 과거 사랑방처럼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내세워 주택 안팎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그가 설계한 판교하우징과 강남하우징을 비롯한 건축물 7개를 분석해 그가 말하는 건축적 대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2부에서 나카는 ‘시키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주거 모델을 탐색한다.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넘어, 지역 경제와 영향을 주고받는 건축물 2개의 구조를 자세하게 풀이한다.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두 건축가의 특별 서문을 실었으며, 한국에서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관해 연구하는 건축가 박창현의 감수를 더해 책의 논의를 더욱 충실하게 전달했다.

편집자의 글

이제는 1가구 1주택 이후의 삶을 설계할 때

고립된 밀실에서 연결된 집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집의 형태는 너무나 익숙하다. 한 가구가 한 채의 주택에 살고, 내부는 가족 구성원만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철제 현관문은 확실한 경계선이 되고, 각 가정은 철저히 독립된 단위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런 주거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202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은 『탈주택』을 통해 ‘1가구 1주택’이라는 현대 주택 형식이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구조적 산물일 뿐, 절대적 이상향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량 공급된 노동자용 주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 주거 모델은 국가와 산업자본가가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의 일부였으며, 오롯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에 집중되었다. 남성은 근무지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에 머무르며 가사를 도맡는다는 분업 체제하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적합한 환경으로 고안된 것이다. 이렇게 흩어지지 않고 한 주택 안에 집중된 균일한 노동력은 제각각이지 않은 균일한 생산력과 그대로 연결되며, 직접적으로는 산업자본가가 취하는 이윤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노동의 형태도 가족의 형태도 변화했다. 핵가족이 중심인 주택 모델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고립과 이웃 간 단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는 기존 주거 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1가구 1주택’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적 주거 모델을 제안한다. 제목 그대로, 기존 주택 형식을 탈피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끄는 건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라는 착각

지역사회는 점점 더 단절되고 공동체는 사라져 간다. 이웃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각자의 집에서 일어난 문제는 철저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같은 이웃 갈등은 고조되지만 정작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야마모토는 이러한 단절이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건축과 주거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오늘날 주택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이 구조는 사생활 보호를 넘어, 이웃과의 관계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고 만다.

두 저자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라는 더 큰 틀 안에서 살아가며 이를 회복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란 단순히 친목을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는 이웃 관계가 아니다. 각 가구가 지역 경제와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핵심이다. 나카는 “주택이 경제와 분리된 한, 진정한 공동체는 형성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주택을 그저 소비하거나 잠만 자는 장소로 전락시키지 않고, 공동체의 본질과도 같은 ‘경제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을 맞이하는 현대 사랑방, 시키이(閾)

야마모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시키이는 일본어로 ‘문턱’이라는 뜻이지만, 한 발짝으로 넘을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택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중간 공간이다.

과거 한국의 사랑방처럼 시키이는 사적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외부를 향해 개방된 장소다. 전통 한옥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었으며,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러나 현대 주택에서는 이러한 기능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문이 닫혀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외부를 향해 개방하고 주택을 공유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방같이 사적 공간 안에 공적 공간을 마련해 주거 공간이 완전히 폐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웃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시키이는 그저 응접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적 장치다. 오늘날 주택이 철저히 개인화된 생활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면, 시키이는 외부 세계를 주택 안으로 끌어들이며 관계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공간 이상의 관계를 설계하는 건축가

『탈주택』은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안하는 동시에, 공간을 넘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거듭 질문하고 실험한다. 건축가는 물리적인 형태만을 설계하지 않는다. 건축물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회의 구조가 변화할 수 있다. 더 이상 ‘1가구 1주택’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 책은 건축가, 도시계획가뿐 아니라 공간과 공동체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책 속에서

“탈주택”이란 프라이버시에 지나치게 편중된 거주전용주택에서 벗어나자는 건축적 대책이다. ⋯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이자 새로운 거주 시스템에 대한 제안이다.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9쪽/「들어가며」 16쪽

우리는 1가구 1주택의 내부에 갇혀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은 조금도 없이 ‘행복한 주거 양식’을 받아들였다. ⋯ 사실은 그 안에 완벽하게 수용되고 갇혀버린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서문」 30쪽

건축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현재의 핵가족이 진화의 최종 형식이라는 착각이다. 1가구 1주택은 핵가족을 위한 거주 형식이다. ⋯ 질 좋은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즉 최종 형태도 그 무엇도 아니다.

「서문」 32-33쪽

내가 현관을 투명 유리로 만들려 하는 이유는 안과 밖의 관계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 현관에 저항감을 느끼는 건 1가구 1주택이라는 주택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작업실이라면 현관문을 투명하게 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작업실로도 사용할 수 있는 주택」 133쪽

주택과 인프라는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 ⋯ 우리는 장소 고유의 지역사회(커뮤니티)를 지역사회권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장소에 어울리는 인프라 시스템이나 장소 고유의 경제를 주택과 함께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비즈니스가 가능한 가설주택」 153쪽

커뮤니티라는 인간관계를 파괴해 온 다양한 원인 중에서도 핵심은 1가구 1주택이라는 주거 형식이다. 우리는 그런 주택을 계속 설계해 왔고, 이는 건축가들의 큰 실수였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 186쪽

사회학자는 과거를 조사하지만 건축가의 일은 사회학자의 일이 끝난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건축가의 관점에서 미래는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커뮤니티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공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 205쪽

차례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들어가며

서문 | 주택에 갇힌 ‘행복’ | 야마모토 리켄

노동자를 위한 주택
사생활이라는 행복의 형태
핵가족은 가족 진화의 최종 형태인가
시키이라는 공간
지역사회권
내부에 경제구조가 존재하는 주택

1부 | 시행 | 야마모토 리켄

모든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구마모토현 호타쿠보 제1단지

스캔들
집합주택의 무엇이 문제인가
집합 이론
본질적인 모순

공영주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코하마 시영주택 미쓰쿄하이쓰

작은 구획이 좋다
주택이라는 건축 공간의 문제

Small Office Home Office—베이징 젠가이SOHO

베이징대학에서의 강연
외부로 개방하는 계획

작업실로도 사용할 수 있는 주택—시노노메 캐널 코트 1구역

내부의 프라이버시, 내부의 행복
투자 대상이 된 주택
갖춰지지 않은 제도

비즈니스가 가능한 가설주택—헤이타 모두의 집

마지막 강의를 하는 날부터
주택 공급 시스템의 무기력함

한국 공영주택의 자유—성남 판교하우징

샐러리맨 가족을 위한 주택
작은 광장, 커먼 데크의 자유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서울 강남하우징

거대 집합주택
지금까지는 없었던 배치 계획
마주 보는 관계, 그리고 옥상의 텃밭
일을 하는 장소가 커뮤니티를 만든다

2부 | 제안 | 나카 도시하루

작은 경제의 건축 공간—식당이 딸린 아파트

1. 작은 경제를 지렛대 삼아 열린 생활환경을 만들다

거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생활환경
다용도 중간 영역을 만들다
소프트웨어의 디자인: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맺는다

2. 설계 과정

무엇을 만들 것인지 생각하면서 설계한다
식사의 가능성
식당이 있으면 기뻐할 거주자는?

3. 식당이 딸린 아파트의 현재

전시장 같은 가구 디자이너의 SOHO 주택
출세운을 만든다? 3층의 SOHO 주택
공용 세탁실은 모두 함께 사용한다
예전부터 식당이 있었던 것처럼
마르셰가 열리는 날은 작은 가게가 많아
친목회에서 펼쳐지는 작전 회의
보다, 알다, 먹다
공유오피스의 진열 선반

4. 작은 경제

작은 경제란
시설로서의 전용주택
제도와 시설의 공진
작은 경제의 가능성

순환하는 공간으로—고혼기의 집합주택

작업실이 있는 주택으로 이루어진 일자집
건축의 형태로 빗물을 모으다
두 가지 순환을 겹치다

발문 | 료가와마치의 공동체 감각 | 야마모토 리켄

마치며
감사의 말
감수자의 말
도판 출처

야마모토 리켄

도쿄예술대학원 미술연구과 건축학전공을 수료했고 1973년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을 설립했다. 2007부터 2011년까지 요코하마국립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나고야조형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 사이타마현립대학, 공립하코다테미래대학, 요코스카미술관 등이 있으며 취리히, 톈진, 베이징, 서울 등에서 복합 시설, 공공 건축, 집합주택 등을 설계했다. 1988년과 2002년에 일본건축학회상을, 1998년에 마이니치예술상을, 2000년에 일본예술원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2024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과 국제예술 부문 문화청 장관표창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신편 주거론(新編 住居論)』 『권력의 공간/공간의 권력(権力の空間/空間の権力)』 『마음을 연결하는 집』(공저) 등이 있다.

나카 도시하루

도쿄대학원 공학계연구과 건축학전공을 수료했고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요코하마국립대학원 Y-GSA의 설계 조수로 활동했으며 2012년에 나카건축설계스튜디오를 설립했다. 2016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일본관에 출품했으며 주요 작품은 SCOP TOYAMA,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공동 설계), 식당이 딸린 아파트, 가즈사키보노사토오무카이상 등으로, 지역 커뮤니티를 의식한 작품을 다수 설계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4년에 굿디자인 금상, 2016년에 일본건축학회 신인상, 2024년에 도야마현 건축문화상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 『두 개의 순환(2つの循環)』 『마음을 연결하는 집』(공저)이 있다.

박창현

서울을 기반으로 건축, 공간, 가구를 디자인하는 건축가다. 2013년 에이라운드건축을 설립하여 건축의 사회적 관점에 관심을 두며 작업한다. 공용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 건물과 건물의 접점을 통해 동네의 연결을 공간적으로 제안한다. 최근 완공작으로 공동주택인 써드플레이스 시리즈와 정발산 주택 등이 있으며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는 국내외 건축가 80여 명의 인터뷰와 언형세미나Language and Form를 통해 건축계의 독자적인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에이라운드건축은 2013년에 서울시건축상을, 2014년에 김수근프리뷰건축상을, 2019년에 독일 아이코닉어워드를, 2020년과 2024년에 일본 굿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이정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주)리아트 통역과장을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 및 동양철학·종교학 연구가, 역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옮긴 책으로 『마음을 연결하는 집』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이토 도요의 어린이 건축학교』 『지적자본론』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백』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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