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한국 현대 디자인사: 디자인으로 읽는 한국 정치사회사

온라인 판매처

『한국 현대 디자인사』 세 번째 개정증보판 출간!
한국 디자인사를 이해하기 위한 단 한 권의 필독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권력의 언어, 디자인

『한국 현대 디자인사』는 2008년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개정돼 온 유일한 한국 현대 디자인 통사다. 17년의 역사를 거친 이번 세 번째 개정증보판은 2010년대 이후의 시각 문화와 사회 담론을 새롭게 반영해,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역사서임을 드러내 보인다. 20년 이상 디자인사를 연구해 온 저자 김종균은 한국 디자인의 형성과 변화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며 한국 디자인사 70여 년을 꿰뚫는다. 이 책은 2000년대 초부터 산업 정책과 문화정치, 제도와 예술의 교차점에서 디자인을 읽어온 저자의 축적된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의 차별점은 디자인을 미학이나 양식이 아닌 ‘정치적 언어’로 다룬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와 미 군정기의 제도적 실험에서 출발해, 산업화·개발독재·민주화·세계화를 거치는 과정을 따라가며, 각 시대에 디자인이 어떻게 산업과 권력의 도구로 동원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기존 디자인사 서술이 인물이나 양식을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면, 『한국 현대 디자인사』는 시대를 관통한 구조적 힘, 즉 제도·정책·사회 담론 속에서 디자인이 작동한 방식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한국 근대 디자인은 서구의 자생적 모더니즘처럼 기계문명과 기술 발전에서 자연히 파생된 흐름이 아니다. 식민지 지배, 전쟁, 국가 주도의 개발 정책 속에서 단속적으로 형성되며, 디자인은 근대화의 수단이자 정체성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했다. 이 책은 그 특수한 궤적을 치밀하게 추적하며, ‘한국적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시각 언어가 오늘날까지 우리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과거를 다루지만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현재진행형 한국 현대 디자인사다.

편집자의 글

정체성을 디자인한 국가
『한국 현대 디자인사』는 디자인을 사회 구조와 권력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저자는 제도와 정책, 교육과 시각 문화가 얽힌 장치로서 디자인을 바라보며, 국가가 주도한 ‘한국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다. 근대화의 명목 아래 진행된 여러 캠페인과 문화 정책은 전통을 재구성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작동했다. 농촌 개발과 생활개선, 관광 홍보와 국제 행사까지, 디자인은 시대의 이념을 시각화하며 국민의 일상에 스며든 국가의 언어가 되었다.

근대화의 미명 아래 만들어진 ‘전통’
‘한국적’이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

예컨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주도한 ‘한국적 정체성’은 국민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정부가 독점적으로 전매하던 담배 이름만 봐도 정권의 방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승리’ ‘무궁화’ ‘진달래’ 같은 서정적 이름이 ‘재건’ ‘새나라’ ‘충성’ ‘거북선’ 등으로 바뀌면서, 전통의 상징들은 국가 이념을 시각화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주택 개량 운동과 미신 타파 운동, 그리고 각종 선전 포스터와 관광 캠페인 속에서 ‘한국다움’은 근대화의 미명 아래 새로 고안된 규범이었다. 즉 이 시기의 디자인은 산업 발전과 국민 계몽을 위한 시각 전략이자 일상에 스며든 권력의 언어였다.

1980년대에 들어 민족주의 담론은 “세계 속의 한국”을 내세운 문화 정책으로 바뀌었다. 서울올림픽과 서울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정부는 세계 시장에 내놓을 ‘한국적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고, 짧은 기간에 급조된 이 ‘한국성’은 삼태극, 오방색, 십장생, 하회탈, 한글, 단청 등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를 대거 동원해 구성되었다. 과거에는 국가 캠페인에 따라 미신이나 봉건 잔재로 치부됐던 전통 소재들이 다시 관광 상품 이미지로 편집되었고, 이전 정권이 가장 중요시한 역사적 인물 이순신 장군을 대신해 세종대왕이 새로운 민족 상징으로 떠올랐다.

『한국 현대 디자인사』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한국적 정체성’이 자생적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시대마다 달리 작동한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준다. 1970년대 민족주의가 내부 결속을 위한 시각 전략이었다면, 1980년대 한국성은 세계 시장을 향한 시각적 브랜딩이었다. 두 시기의 디자인 모두 ‘한국다움’을 말하지만, 그 언어는 철저히 권력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재가공된 것이다.

‘수출국 대한민국’을 설계한 디자인 전략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수출제일주의’ 아래에서 디자인은 ‘수출국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였다. 공예품의 ‘미술 수출’과 수출 박람회의 포장‧디자인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서, 한국을 알리는 시각적 홍보물이기도 했다. 자동차 포니(Pony)의 수출은 근대화의 상징이 되었고, 1990년대 휴대폰과 가전제품은 기술력과 감성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한국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산업 성공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국가적 전략 속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동원되었는지를 조명하며, 수출 진흥기의 디자인이 국가 이미지를 구축한 첫 문화적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초국가적 시선이 여는 새로운 역사
서구 디자인 발전사가 150년이 넘는 자생적 흐름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면, 한국 근대 디자인은 식민지 지배와 냉전, 군사독재,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단속적으로 형성되었다. 저자는 전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혼란, 즉 자국 디자인사를 서구 근대화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 디자인사를 식민주의와 근대성, 탈식민주의가 교차하는 비서구적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초국가적 역사 서술’은 한국 내부의 역사 쓰기를 넘어, 서구와 일본, 한국이 얽힌 동아시아 디자인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시도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파시즘 양식, 만주국 제관 양식, 전후 미 군정기 생활양식처럼 국경을 넘는 시각 체계의 흐름 속에서 디자인을 다시 바라보려는 것이다. 저자 김종균은 독자에게 이러한 초국가적 시각을 통해 “디자인을 문화 교류와 권력 구조 속의 언어”로 다시 읽을 것을 제안한다.

책 속에서

왜 ‘한국적 디자인’이 등장했고 한국의 미가 자연미 혹은 선의 미, 백의 미로 대표되는지, 왜 한국을 상징하는 색깔이 오방색이 되었는지, 왜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기와지붕을 쓰고 있는지, 왜 도시, 농촌을 막론하고 전통 대신 무국적의 풍경만 남았는지, 왜 국가가 디자인의 진흥을 담당했는지, 왜 선진국이 되도록 우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없고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등장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서구의 디자인사를 백번 들여다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디자인 역사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9쪽, 「머리말」

근대화의 진행이 근대성의 출현으로 곧바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외형적으로는 일제를 통해 근대적 형태의 산업화와 합리주의가 한국 사회에 등장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달랐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제국주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일본은 이미 서구 사회에 종속된 상태였고, 일본에 종속된 조선 사회는 이중 종속의 형태로 식민지 근대성을 띠었다.

20쪽, 「근대, 근대화, 모더니즘」

실질적으로 한국공예시범소는 약 25개월의 짧은 기간에 진행된 일회적인 진흥 활동이었던 셈이지만 그 내용은 이후 한국 디자인 발전에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80쪽, 「한국공예시범소의 코리아 프로젝트」

미술은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1970년대에 ‘민족정신 고취’라는 명목의 선전용 예술로 ‘민족기록화’ 시리즈가 제작되는가 하면, 국전에서는 민예적 소재나 새마을운동 등 정권의 정통성이나 이데올로기를 대변할 수 있는 소재가 대거 수상하고 홍보되었다.

123-125쪽, 「상공미술전람회와 아카데미즘」

기본적으로 모더니즘은 공업 생산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제주의 양식은 철골과 유리, 콘크리트를 주로 이용한 조립 생산방식을 의미했지만 한국에서 전개된 건축 양상은 국제주의 모더니즘의 표피적 특징을 차용한 시멘트 덩어리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166쪽, 「모더니즘의 유행」

한국적 민주주의는 인류 문화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동아시아나 한국 문화의 특수성과 함께 독자적 문화, 고유한 문화를 유독 강조했는데, 이는 다른 의미에서 폐쇄적인 사회, 정체된 사회였음을 반증하기도 했다. ‘민족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명제하에 ‘한국적’이라는 용어로 생산된 많은 전통문화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소재들을 선별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208쪽, 「프로파간다 예술과 한국적 디자인」

대기업 사이에서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디자인 경영 광풍이 몰아쳤고 경제만큼이나 디자인 부문도 압축적인 초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6년 “경영을 알려면 디자인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글로벌 경영의 원년,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포하고 그룹 고위 임원 180여 명에게 집중적인 디자인 교육을 실시했다.

328쪽, 「디자인 경영과 디자인 신국부론」

차례

머리말
각색하지 않은 우리 디자인의 맨얼굴

1장 근대화와 디자인: 디자인의 탄생에 관하여 | 일제강점기
1 근대, 근대화, 모더니즘
2 일제강점기, 기만적 문화 정책과 ‘조선색’

2장 미국 문화와 근대 디자인: 해방 공간에서의 미국식 생활 방식 | 1945–1950년대
1 미 군정청의 활동과 한국 디자인
2 한국공예시범소의 코리아 프로젝트

3장 권력과 한국적 디자인: 정부 주도의 디자인 진흥기 | 1960–1970년대
1 산업 디자인의 등장
2 상공미술전람회와 아카데미즘
3 모더니즘의 유행
4 권력에 동원된 디자인
5 프로파간다 예술과 한국적 디자인

4장 국제화와 오리엔탈리즘: 세계 무대를 위한 미션 | 1980년대
1 선진국 프로젝트와 디자인
2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디자인

5장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산업화: 디자인 무한 경쟁 | 1990년대
1 디자인 경영과 디자인 신국부론
2 포스트모더니즘과 한국형 디자인

6장 시장 경쟁과 글로벌 디자인: 권력을 위한 신무기, 디자인의 재발견 | 2000년대
1 디자인 전쟁과 브랜드 개발
2 공공 디자인과 정치

7장 탈산업화와 디자인 담론의 확대 | 2010년대 이후
1 탈산업화와 공생의 디자인
2 디자인 전시와 아카이브, 디자인 담론

8장 한국 디자인 역사 서술의 새로운 가능성
1 모방과 창조
2 한국 디자인 소사: 디자이너 한도룡
3 한국 디자인사의 주요 쟁점

맺음말
한국 디자인 연표
참고 문헌
관련 도서
도판 목록
찾아보기

김종균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특허법무 전공으로 충남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현대디자인 큐레이팅 전공으로 런던 킹스턴대학교에서 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지식재산처에서 상표·디자인 심사관으로 재직 중이다. 틈틈이 한국의 디자인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디자인 지식재산권을 강의하거나 관련 글을 연재하며, 디자인 전시 등을 열고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런던디자인필름페스티벌 등의 기획에 참여했고, 『모던데자인』(2025), 『디자인 전쟁』(2013)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