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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종 Chung Youn-chong

Chung Youn-c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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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종 Chung Youn-chong』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적 미학의 현대화를 실천해온 디자이너 정연종의 작업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카이브다. 동시에 이 책은 2026년 2월에 열린 《198X 정연종 展: 도전, 불굴 그리고 정연종》 추모전의 도록을 겸한다. 작가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 주요 포스터 작품 37점을 비롯하여 패션, 공예, 서울 지하철 타일 벽화, 캐릭터 디자인 등 시각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도했던 방대한 작업물을 수록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한국 디자인사 연구자 김종균의 비평문을 덧붙여, 정연종의 행보와 그의 작품이 지니는 역사적 맥락과 조형적 가치를 상세히 기술했다. 특별히 강원도 강릉 출신인 작가가 고향의 정서와 전통 문양을 디자인의 원천으로 삼아 한국적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과정을 시각 자료와 함께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이 책은 케이팝과 K-드라마, 영화 등 한국적 이미지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현재, 한국 디자인의 비약적 발전기였던 1970-80년대에 이미 한국적 스타일의 세계화를 탐구하고 실현했던 선구자의 자취를 되짚어본다는 점에서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편집자의 글

도전과 불굴의 정신으로 빚어낸 한국적 디자인의 원형

2024년 9월 작고한 그래픽 디자이너 정연종(1944-2024).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이라는 뿌리에 단단히 고정하고, 이를 디자인이라는 현대적 도구로 증명해낸 실천가다. 남들보다 늦은 시작을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며 독보적인 실기 능력을 발휘했고, 척박했던 한국 디자인 초창기에 자생적인 디자인 문법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섰다.
『정연종 Chung Youn-chong』은 정연종의 작업 세계를 망라한 아카이브이자 2026년 2월 열린 《198X 정연종 展: 도전, 불굴 그리고 정연종》 추모전의 도록이다. 약 60점에 이르는 작품을 수록했으며 특히 고향 강릉의 정취를 담아 선보인 1979년 〈한국 이미지전〉부터, 한국 전통미를 현대적 그래픽으로 재해석한 1980년대 〈한국의 미〉 시리즈 포스터들을 충실히 복원했다. 정연종의 작업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국적 맥락을 구현해낸다. 1980년대 서울 지하철 2, 3, 4호선 개통 당시 그가 기획하고 제작한 타일 벽화들은 현재까지도 공공 디자인의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았으며, 한국적 소재를 상품화한 민예품 브랜드들은 오늘날 K-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을 수십 년 앞서 제시한 선구적 지표가 되었다.
비록 ‘국풍81’ 포스터와 ‘로티’ 캐릭터 사건 등 시대의 질곡을 함께 겪기도 했으나, 이 책은 그 모든 과정을 가감 없이 기록하며 한 디자이너의 불굴의 의지를 조명한다. 정연종의 삶은 디자인이란 결국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고 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치열한 과정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책 속에서

내 삶의 흔적은 숯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뜨겁게 타고 너울거리다가 일순 연기도 티도 없이 재가 되어 회진(灰塵)되어야 한다. 내 정신의 물줄기는 언제나 마르지 않고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 어느 때, 작열하는 태양으로 하여 그것이 증발되어서도 아니 되며 숲의 무성함, 돌쩌귀와의 부딪침으로 숨어들어서도, 행로를 잃어서도 아니 된다. 내 창작의 공간은 아픔과 혼돈이 충만하더라도 생명의 소리 같은 기쁨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탄생의 기쁨이다. 나를 불사르고 가루가 되어 나는 재 속에서 나온 연기도 티도 아닌, 영롱한 사리(舎利)가 나의 흔적이어야 한다. 내 정신의 진수(眞隨)는 그것이어야 한다.

「정연종, 1979년 《한국 이미지》」, 46쪽

디자이너로서 창작에 임하는 나의 소신은 (그 누구도 그러하겠지만) 지식의 소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식이 아주 없는 자도 아니다. 지식을 쌓아 놓고 팔아먹는 자처럼 교만하고 굳어 버린 우상(偶像)이 아니다. 언제나 굶주린 독수리 새끼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부를 줄 모르는 젊음이요, 산 정신의 자세이다. 결코 지자(知者)도 아니요, 무지자(無知者)도 아니다. 내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상태(狀態)이다.

「정연종, 1977년 월간 『디자인』 11월호 인터뷰」, 50쪽

정연종의 생과 작품은 시대의 거울이다. 당시 한국사회에서 디자인은 개성 있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도덕성을 반영하는 선전물이자 공적인 기술이고, 디자이너는 산업의 전사로 호명되었지만, 정연종은 마냥 수동적인 태도로 흐름을 쫓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진정성 어린 태도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상품화·세계화시키려는 실험을 계속하고, 한국미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유행이 지나가버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동은 지속되었다. 또한 전통을 해석하는 과정에 당대의 트렌드인 모더니즘, 혹은 미니멀리즘적 경향을 적극 따르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방식으로 대중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점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한 신문 기사에서 전하듯, “전통 민화 특유의 자유로운 기법과 해학적인 요소를 계승하여 자신만의 화법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가 그의 작품 경향을 잘 설명한 것이라 할 것이며, 관념과 프로파간다에 갇힌 ‘한국적 디자인’을 현실로 끌어내는 데 이바지하였다.

「디자이너 정연종과 ‘한국적 디자인’」 , 60쪽

차례

정연종의 작품
디자이너 정연종과 ‘한국적 디자인’ - 김종균

정연종 추모전 추진위원회

디자이너 정연종의 작고를 기리며 그의 디자인 사료를 발굴하고 기록하기 위해 동료 및 선후배 디자이너,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단체이다. 류명식 위원장을 필두로 김현, 명계수, 이영혜, 김성천 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도록 발간과 추모 전시를 통해 정연종이 남긴 한국적 디자인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종균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특허법무 전공으로 충남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현대디자인 큐레이팅 전공으로 런던 킹스턴대학교에서 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지식재산처에서 상표·디자인 심사관으로 재직 중이다. 틈틈이 한국의 디자인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디자인 지식재산권을 강의하거나 관련 글을 연재하며, 디자인 전시 등을 열고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런던디자인필름페스티벌 등의 기획에 참여했고, 『모던데자인』(2025), 『디자인 전쟁』(2013)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