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를 늦게 불렀다. 그러나 김윤신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 그는 조금 일찍 미래로 가 있었다.
그는 전쟁과 피란을 지나 살아남았고, 한국 현대 미술의 한복판에 섰으며, 삶이 안정되어가던 마흔여덟에 문득 안정된 교수직을 뒤로하고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낯선 언어로 둘러싸인 이국의 땅, 야생의 나무 앞에서 전기톱을 들었다. 그리고 아흔을 넘긴 지금, 세계는 열렬히 환호하며 그를 다시 부른다. 새로운 시작이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초청
세계가 주목한 91세 현역
마흔여덟에 안정된 자리를 떠나 지구 반대편에서 전기톱을 들고, 아흔이 다 되어서야 세계 미술사의 호출을 받은 사람이 있다. 오늘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내가 선택한 삶이 틀린 것은 아닐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안정된 자리를 떠나도 괜찮을까’. 그런 두려움 앞에서 김윤신은 자신의 삶으로 답한다. 아직 자기 세계를 조각할 시간은 남아 있다고. 아주 충분히.
김윤신은 세계가 뒤늦게 발견한 90대 현역 작가다. 1936년생인 그는 2023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시 이후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되며 전 세계 미술계에서 새롭게 호명되기 시작했다. 아트시 ‘2024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10인’에 선정되고, 문화체육관광부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으며, 2026년에는 호암미술관 최초 한국 여성 작가 대규모 회고전의 주인공이 됐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 이어진 이 놀라운 장면들은 김윤신이 ‘늦게 발견된 작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자기 세계를 완성해온 예술가였음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동시에 많은 이들은 여전히 작업복을 입고 붓과 전기톱을 드는 그의 모습에서, 멈췄다고 생각한 자리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힘을 얻는다.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마흔여덟, 안정된 삶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파고를 겪고 살아남았다.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거쳐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유학하고, 귀국 후엔 상명여자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흔여덟의 나이에 안정된 교수직을 뒤로하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작업하는 데가 내 나라이고, 내 고향이에요.”
우람한 나무와 야생의 자연, 자유를 찾아 낯선 언어를 쓰는 땅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여 년간 오직 창작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조각했다.
전쟁과 이주, 파리와 남미의 낯선 땅의 시간을 지나
매 순간을 예술로 새기다
김윤신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일제강점기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나 광복 이후에는 두만강을 건너 귀향하며 죽음의 풍경을 지났다. 오빠를 만나기 위해 38선을 넘어 남하하던 길에서도, 한국전쟁 중 서울에서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면서도 그는 순간순간 생의 위태로움을 통과해야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뒤에도 낯선 환경과 현실적인 어려움은 계속되었지만, 40여 년간 오직 창작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평탄하지 않았지만 삶은 순간순간이 축제였다. 그에게는 언제나 생을 향한 환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에너지가 함께 있었다. 파리 유학 시절에는 이응노와 우정을 나누고, 꼬부랑 수염을 한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겠다며 여행을 떠났다.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와 악수한 일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후에는 더 기묘한 모험이 이어졌는데… 다채로운 삶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듯 생생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여자 둘이 살 겁니다, 앞으로도 쭉
‘결혼하지 않았지만 혼자 살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의 모양
그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혼자 살지 않았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제자 김란은 그의 수양딸이 되었다. 김란과 김윤신은 둘이서 같이 살고 있다. 스승과 제자, 가족과 동료, 생활의 동반자라는 여러 이름 사이에서 김란은 먹는 일부터 잠자는 일까지 잔소리처럼 김윤신의 하루를 돌보고, 김윤신은 작업에 몰두한다. 아웅다웅 잔소리도 참견도 많은 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산전수전 두 손 꼭 잡고 통과한 다정함의 증명이다.
“둘이 안 싸우셨어요?”
“지금도 싸우는데 왜 안 싸웠겠어요. 작업하시다 왜 안 주무시냐, 그러고 싸웠죠.”
(「윤신의 별별 잔소리꾼과 예술가의 건강법」 중에서)
사실 아르헨티나에 처음 갔을 땐 씩씩한 김윤신도 잠시 겁을 먹었다. 그때 란이 한 말.
“선생님, 옛날에 미술사에 남은 유명한 사람들도 다 굶으면서 작업해서 그렇게 남았어. 제가 선생님 도와드릴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작품만 하세요.”
김윤신은 그 말을 잊지 못한다.
“그 소리가 하늘에서 하느님이 하는 말같이 들렸어요. 열심히 작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김란의 이상한 선생님」 중에서)
신생아보다 무거운 전기톱을 들고
나무와 돌, 회화와 조각과 하나되다
작업실도, 재료도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김윤신은 쓰러진 나무를 주워 길거리에서 전기톱을 들었다. 체인과 연료를 더하면 신생아보다 무겁고, 전기톱은 본체만 5킬로그램에 가깝다. 굉음과 진동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 도구는 김윤신의 손에서 나무를 쓰러뜨리는 기계가 아니라 조각의 도구가 되었다.
김윤신에게 조각은 나무를 이기는 일이 아니다. 나무와 오래 마주하고, 쓰다듬고, 자르고, 깎으며 그 안의 생명을 꺼내는 일이다. 전기톱으로 단단한 나무를 절단하는 행위는 생명을 끊는 일이 아니라, 나무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가 1970년대 말부터 이어온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두 개체가 만나 하나가 되고, 다시 나뉘며 무한히 확장된다는 예술 철학이다. 난해한 미술 용어이기 전에, 나와 나무, 나와 돌, 삶과 예술이 잠시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김윤신의 생활 철학이다.
멕시코 오닉스 산지에 머물며 그라인더로 단단한 원석을 절단하고 연마한 석조각은 목조각과는 또 다른 회화적 깊이를 보여준다. 원석의 상태에서는 알 수 없던 색과 무늬는 절단과 연마의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파리에서 석판화를 공부한 경험은 회화와 조각을 자유롭게 오가는 토대가 되었고, 팬데믹 이후에는 폐목을 결합하고 그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 ‘회화-조각’으로 확장되었다. 한국의 기억과 아르헨티나의 색채, 자연의 형상과 종교적 상징을 한데 품은 김윤신의 작업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완전히 새로운 조형 세계가 되는지 보여준다.
안그라픽스 기억 총서 첫 책,
『김윤신, 전기톱을 든 여인』
안그라픽스가 새롭게 선보이는 ‘기억 총서’는 한국 예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예술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리즈다. 한글의 첫 자음 ‘ㄱ’에서 출발해 ‘기억’이라는 의미로 이어지는 이 총서는 작품만으로는 온전히 알기 어려운 예술가의 생애를 이야기로 들려주며 인내와 영감이 공존하는 창작의 시간을 조명한다. 낯설고 때로는 쉽게 이해받지 못했던 길을 지나 끝내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오늘의 독자에게 용기를 건네고, 미래의 기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총서는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