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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안내판이 바뀐 사연: 잊기 전에 기록해두는 공공 디자인의 꼼꼼한 실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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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궁궐의 안내판이 바뀐 사연』은 지난 3년간 진행해왔던 궁궐 안내판 개선사업을 꼼꼼히 기록한 것이다. 4대궁 및 종묘 안내판 개선사업의 모든 과정, 그리고 사업과 관련된 여러 이해 당사자의 다양한 견해가 담겨 있다. 사업과 관련된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인터뷰, 구술 정리도 함께 실었다. 보고서 형식의 단순하고 건조한 기록에서 벗어나 체험 공유 차원에서 여러 비공식적인 변수와 착오, 지체, 대립과 충돌 등의 문제점까지 서술하여 관련자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공공 디자인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분석,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편집자의 글

공공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민·관·학, 디자인 전문가 집단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그 수요도 증가했다. 국가·사회적인 공간과 시설, 그리고 환경의 심미성(기능성과 심미성의 조화)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기대 수준 역시 높아졌다. 이러한 인식과 수요, 기대 수준에 비해 공공 디자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내의 열악한 현실을 인식하고 외국의 선진 사례를 소개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와 분석,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4대궁 및 종묘 안내판 개선사업’의 모든 과정, 그리고 사업과 관련된 여러 이해 당사자의 다양한 견해가 담긴 유사 백서인 〈궁궐의 안내판이 바뀐 사연〉은 이러한 공공 디자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와 분석, 공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1차적으로는 안내판 개선사업 백서의 기능에 충실하되, 외연 확장과 본질에 대한 접근을 통해 공공 디자인 전체를 아우르는 유사 매뉴얼, 유사 다큐멘터리, 참고 문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 책은 보고서 형식의 단순하고 건조한 기록을 넘어 체험 공유 차원에서 여러 비공식적인 변수, 착오, 지체, 위기, 대립과 충돌 등의 문제점까지 고스란히 서술해 공공 디자인 관련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사업과 관련된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인터뷰, 구술 정리 등을 통해 불편부당하고 공평무사하게 전달해 사업 안팎의 대립 구도를 사실대로 인식하고 현실적인 극복 방안을 고민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행정적, 자족적 백서를 넘어 공공 디자인에 관심이 있거나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그리고 시작이 반

‘서울 4대 궁궐 및 종묘 안내판 개선사업’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궁궐의 안내판을 기존보다 발전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업으로, 문화재청과 아름지기가 뜻을 모아 시작했다. 수년 동안 아름지기는 창덕궁 안팎을 청소하면서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과 우리 문화 특유의 부드럽고 다정한 정서에 매료되었다. 다만 후손이 만들어놓은 여러 시설들이 수백 년 전 선조들의 솜씨에 미치지 못해 그 격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마침 문화재청의 사업 제안이 있어 민과 관이 손을 잡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말이다. 또 ‘열에 아홉이 반’이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90퍼센트가 진행된 일도 이제 절반을 넘었다는 마음으로 끝가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4대 궁궐 및 종묘 안내판 개선사업’이 진행된 3년여의 시간은 이러한 속담이 꼭 들어맞는 여정이었다. 국내외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단체, 그리고 문화재청과 아름지기가 힘을 합하면서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지만,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정을 밟으면서 맞닥뜨린 수많은 시행착오와 대립, 그리고 예상 밖의 변수들이 번번이 시간을 지체시켰다. 열의 아홉을 지나왔건만 아직 갈 길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한 것 같은 지난한 과정을 인내하고 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공공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라는 배움을 얻을 수 있었고, 이런 과정은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뜻 깊은 체험으로 기억되었다.

〈궁궐의 안내판이 바뀐 사연〉은 지난 3년간 해왔던 궁궐 안내판 개선사업의 꼼꼼한 기록이다. 궁궐 안내매체 시스템과 각각의 안내판 디자인 등 사업의 결과물뿐 아니라, 일이 시작된 사연에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한 과정, 작업의 진행과 협의 절차 등의 기록이 담겨있다. 여과 없는 이 기록이 앞으로 진행될 공공 디자인을 위해 ‘천 리 길이 시작되는 한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이 제대로 된 공공 디자인이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또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에 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참고가 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공공 디자인이 놓치지 말아야 할 기준과 과정, 그리고 원칙을 세우는 데 의미 있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민관 협력 사업의 모범 사례

“이번 궁궐 안내판 개선사업을 공동 추진한 아름지기는 우리 문화재청과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을 통해 다양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민관의 협업으로 추진되었기에 관에서만 주도적으로 추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안내판 디자인과 문안 등 민간 전문가 집단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받았으며,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경직된 법과 제도’ 아래서도 나름대로 훌륭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추진될 또 다른 민관 협력 사업의 좋은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강경환(문화재청 문화재활용과장) 인터뷰 중에서

발전적인 미래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작업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마도 디자이너나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과 궁궐관리소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안내판’이라는 것은 매우 기능적인 시설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자 편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궁궐이라는 문화재의 특성을 고려한 안내판으로 사용자 편의성에 다소 제한을 가하더라도 궁궐의 격에 맞는 ‘고품격 디자인’을 선보이도록 배려했다. 외형적 디자인뿐만 아니라 콘텐츠도 전체 안내매체에서 안내판이 차지하는 정보 위계를 설정하고 심도 있는 내용은 인쇄물이나 기타 유료 자료를 활용하기로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정보의 양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조정자로서 아름지기의 기본 방향은 현재의 상황만을 기준 삼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 안을 훼손하기보다는 더 발전적인 미래에 대해 동의를 구해 나가는 것이었다.” — 장영석(아름지기 부국장) 인터뷰 중에서

모든 디자인은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다

“문화재 안내판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디자인에 관한 나의 일반적인 철학은 ‘모든 디자인은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문화재를 위한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문화적인 감수성은 대용품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프로포션에 있어서 모던한 안내판의 소재나 컬러,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문화재를 설명하는 장치와 문화재 자체는 차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은 오히려 그 과거를 무작정 모방해 역사적인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 무이클 록(콜럼비아대학교 교수, 투바이포 대표) 인터뷰 중에서

궁궐을 위해야 한다, 디테일에 신이 있다

프로젝트팀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궁궐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작업하면서도 한마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한결같은 원칙 때문이었다. — 신연균(아름지기 이사장)

우리의 바람은 안내판 하나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공무원은 물론 일반 시민도 질 높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궁궐은 부분과 전체가 연속적인 변화를 이루며 건축된 건물이다. 궁궐의 이러한 건축적 특징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된 안내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 이상해(성균관대학교 건축과 교수)

투바이포와 안그라픽스는 모든 궁궐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 즉 퀄리티 높은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개발하고자 했다. 그것은 편의성이 있으면서도 진중하고, 문화재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어야 했다. — 마이클 록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투바이포 대표)

수백여 채 건축물이 모인 집합체인 궁궐을 개개 전각으로 설명하는 것은 궁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쓰임새에 따라 나눈 권역 개념은 관람자에게 궁궐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제안한 것이다. —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보호하고 안내해야 할 전통 문화재인 궁궐과 그 수단이 되어야 할 임시 이용 시설인 안내판은 같은 형태와 재질을 사용할 경우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위계여야 한다. — 승효상(건축가, 이로재 대표)

옛 건물들을 보면서 현판 하나 주련 하나가 그 시대의 향취와 격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들은 그 시대의 멋과 기능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낸 이것들은? 디테일에 신이 있다는 한 건축가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 안상수(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부 교수)

차례

들어가는 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그리고 열에 아홉이 반

1장 궁궐의 안내판이 바뀌게 된 사연
첫걸음
민과 관이 약속을 맺다
*인터뷰 01 공공디자인의 새로운 시도, 문화재안내판 개선사업
마침맞은 전문가를 찾는 일
독주가 아닌 심포니
*인터뷰 02 단순한 시설물이 아닌 소통의 매체

2장 그 기록들
궁궐 올바르게 이해하기
*인터뷰 03 편의성, 진중함, 존경심이 담긴 아이덴티티
기존 안내판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진단하다
안내체계와 콘텐츠의 위계
01 일관된 디자인 안내판 체계 구축
02 궁궐을 이해하기 위한 공간 개념
*인터뷰 04 궁궐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권역’의 개념
03 궁을 궁으로 설명하기
*인터뷰 05 궁궐의 품격에 어울리는 짧고 쉬운 영어 안내문
주변 환경과 안내판의 조화
01 안내판의 형태와 크기 결정하기
02 궁궐과 어울리되 구별되는 소재
*인터뷰 06 현대적이면서도 따뜻한 디자인
모던하며 쉽고 정확한 정보디자인
01 표준이 될 지도를 디자인하다
*인터뷰 07 궁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의미 있는 시작
02 서체와 픽토그램
03 여백의 미를 살린 레이아웃과 그래픽 컬러
협의 끝에 완성된 디자인
길고 긴 과정의 마침표, 설치
*인터뷰 08 창업은 어렵지만 수성은 중요하다
*인터뷰 09 발전적인 미래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직업
*문화재안내판 개선사업의 모범 사례

3장 안내판 개선사업을 마치며
창경궁, 덕수궁 그리고 종묘
궁궐 관련 매체의 연계
*대담 3년여의 작업을 되돌아보다
안내판 개선사업 후기

부록
주요 일정
기록
설치된 안내판
참여한 사람들

재단법인 아름지기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한국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통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새로운 문화유산으로 가꾸어가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 단체로 2001년 11월에 창립되었다. 아름지기는 한국의 전통문화유산과 그 주변 환경을 가꾸는 일을 통해 우리 문화의 맥을 계승하고 현대인의 의.식.주 전반에서 전통의 가치가 숨 쉴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덕궁과 종묘 환경 가꾸기, 정자나무 주변 가꾸기, 4대 궁궐과 종묘 안내판 디자인 코디네이션, 해인사 안내판 디자인 사업,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안내판 디자인 사업, 아름지기 아카데미, 세계문화유산 답사, 아름지기 기획전, 한옥에서 우리 음악 듣기, 전통 생활문화 연구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을 통해 우리 전통과 문화유산에 담긴 뜻과 지혜를 널리 알리고 있다. 서울 안국동 한옥과 경남 함양 한옥을 운영해 한옥의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름지기는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우리 문화의 정수를 탐구하고 현대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모범 사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갈 것이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