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활자 만들기 흐름 속에서 제시하는 라틴 활자 디자인 매뉴얼
2018년 한글날, 한 일간지 특집 기사로 한글 타이포그래퍼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다. 오직 글자와 그 디자인 자체에 집중한 기사는 여느 때의 한글날 소식과는 사뭇 달랐다. 서체, 즉 ‘활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노은유의 옵티크, 류양희의 윌로우, 양장점의 펜바탕 등 몇몇 활자는 이제 더 이상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만 아는 활자체가 아니다. 활자 디자인 또는 편집 디자인으로 경력을 시작하지 않았어도,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활자를 하나쯤은 만들어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최근 디자인계의 흐름이다. 더 이상 누군가 만들어 놓은 활자체로는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활자 기술: 라틴 활자 디자인을 위한 실천 지침』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 초보 활자 디자이너가 혼자서도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여태까지의 활자 디자인 도서들은 견본만 많고 자세한 설명은 없는 경우가 흔했다. 유명 활자 디자이너나 활자에 관한 이야기, 활자 디자인의 역사만 언급할 뿐 정작 실기를 돕는 책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이 책은 실제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실천 지침만을 보다 더 쉽고 간편한 방식으로 다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에게도 필요한 라틴 활자 디자인 연습
한국의 활자 디자이너에게는 라틴 문자보다는 한글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활자 디자인 입문자가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실제 국내 활자 디자이너들은 한글이 아닌 라틴 문자로 활자 디자인 세계를 접하게 된다. 한글과 달리 라틴 문자는 겹자음과 겹모음, 합자 원리가 없는 간결한 이용 방식 덕분에 디자인을 배우기가 훨씬 편리한 까닭이다. 국내 디자이너들 중 직접 영문 활자를 디자인한 경우는 많아도 본인의 한글 활자를 가진 사람은 드문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라틴 활자 디자인은 한글 활자 디자인의 전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활자 기술: 라틴 활자 디자인을 위한 실천 지침』은 활자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한국의 디자이너도 매우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150여 가지 활자 디자인 팁과 현업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정보와 해설
『활자 기술: 라틴 활자 디자인을 위한 실천 지침』은 덴마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자 디자이너이자 교수 소피 바이어가 쓴 책이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활자 카를로 오픈(Karlo Open, 2017년)을 비롯해 여러 활자체를 디자인한 그녀는 본인의 경험과 직접 만든 수업 자료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엮었다. 소피 바이어는 활자 디자인 입문자가 어떤 부분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또 어떻게 하면 그것을 빨리 뛰어넘을 수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중 하나다. 각각 1–2쪽에 걸쳐 핵심만 서술된 154가지의 활자 디자인 팁들이 그를 증명한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디자인까지 한 김병조 역시 한국과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벰비(Bemby, 2017년)와 글립스 산스(Glyphs Sans, 2018년) 등의 활자를 직접 디자인했다.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하는 그는,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설명이 조금 부족한 부분에서는 옮긴이 주를 달아 부연 설명했다. 내지 디자인 역시 원서를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적절히 수정하여 독자들이 보고 이해하기 더욱 편하도록 도왔다. 책의 뒷날개에는 김병조가 디자이너에게 추천하는 타이포그래피 도서들이 안내되어 있다. 책 속에는 김병조의 글립스 산스를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코드도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