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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의 한글 타이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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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1890–1981)는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자 철학자, 종교인으로 기독교·불교·유교 등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에 두루 밝아, 이를 융합하여 독창적인 사유 체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우리 말과 글로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사유와 일상 속 깨달음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다석일지』를 남겼다. 이 책은 한글을 재료 삼아 세상을 설명하려 한 다석의 글자가 품은 뜻 알갱이, 글꼴 얼개, 글꼴 그림을 타이포그래피로 해석했다. 이를 통해 한글의 표현 영역은 더 넓어지고,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철학의 언어가 된다.

편집자의 글

사유로 그린 한글, 다석 류영모 한글 그림의 타이포그래피적 해석

삶과 깨달음, 우주의 원리를 한글로 풀어내기 위해 평생을 궁리한 철학자 다석 류영모는 한글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을 펼쳤다. 다석은 한글 자모에 천지인(天地人)과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철학을 덧입혀, 글자의 조형 자체를 통해 인간과 우주, 시간과 존재의 원리를 표현했다. 그가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다석일지』에는 다석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기록하면서 주석을 달듯 그려 넣은 한글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 문장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나타낸 의미의 설계도를 남긴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다석 한글 그림을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다석의 한글 그림은 한글 창제 원리를 재구성한 것으로, 뜻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글자의 시각성을 이용했다. 서구 타이포그래피가 조형적 실험을 통해 ‘글자성’을 획득했다면, 다석의 타이포그래피는 한글이 가진 역(易) 사상에 자신의 깨달음과 의미를 녹여 새로운 한글 형태를 창조한 것이다. 선형적인 문장이 언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시각적인 그림은 언어적 의미 외에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다석의 한글 그림은 시각적이며 현대적일 뿐 아니라 독창적인 타이포그래피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선형적인 구조에서 벗어난 글자들의 시각적 중첩 현상,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를 섞은 자유로운 구도나 읽는 방법이나 순서에 따른 함축적 의미, 위치에 따른 입체적인 변화, 낱말의 배치를 통한 글자 공간 등의 요소로 다석의 한글 그림을 해석하고 타이포그래피적 확장을 꾀한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다석의 철학과 사유를 ‘타이포그래피’에 초점을 맞추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재구성하고, 다석의 한글 그림에서 철학적 함의를 추출해 한글 타이포그래피라는 조형 언어로 설명했다. 철학과 디자인, 기록과 해석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석의 한글 그림을 미학적 시도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타이포그래피 세계를 확장한다.

추천사

한글로 철학하는 다석의 상상력이 한글 타이포그라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황준필의 연구로 다석은 우리나라 한글 타이포그라피 역사에 당당히 편입되어 큰 점을 찍었습니다. 그 의미가 큽니다. 이 책으로 다석은 또한 창작가로서 새롭게 조명될 것입니다.

안상수 |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교장

이 책은 ‘다석 류영모 타이포그라피의 조형적 특징’을 새로 갈무리한 것이다. 다석의 글꼴 지음을 두고 ‘① 글자 합침, ② 좌우 대칭 글자, ③ 글자의 추상적 이미지화, ④ 글자의 원형 배열, ⑤ 공간에서의 글자 표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본 것이다. 크게 다섯 묶음이니 그 안에서 뜻 알갱이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김종길 | 다석철학 연구자

책 속에서

『다석일지』는 약 1,300수의 한시와 1,700수의 시조,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석은 매일 매일 자기 생각을 따라 항해일지처럼 기록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발견 후 첫 해석 과정에서 한문 해석을 다 석에게 의뢰했을 정도로 다석 류영모는 한학으로 교육받고, 여러 종류의 경전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다석일지』에도 여러 부분에 걸쳐 한자가 보인다. 『다석일지』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한자 사용은 줄고, 한글 사용이 늘어난다. 다석이 생각을 펼쳐내기에는 한자만으로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와 세상과 인간을 설명하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기호로 한글이 적합하다고 여긴 것이리라. 상형문자인 한자에 비해 철학적인 원리로 제작된 한글은 의미의 변화가 더 쉽고 다양하다. 한글 쪽자가 모이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글자의 조합이 가능하다. 구조적으로 의미 설계가 가능한 의미 표현 체계다.

24쪽

다석이 사람을 표현하는 말 중에 ‘긋’이 있다. 긋은 점을 말하고 끗은 끝까지 가서 끄트머리에 모인 점이다. ㄱ은 가로로 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와 세로로 그어진 정신줄이다. 이 정신이 가로줄 ㅡ, 세상과 만나면 ㅅ 사람이 생긴다. 하늘의 정신이 세상과 만나 생긴 존재가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생각, 정신줄이 본질이며, 생명이고, 영원으로 가는 길이다. 하늘에서 정신을 받아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긋’에 담겨 있다. ‘ᄀᆞᆫ’이 하늘과 땅 사이, 시간과 공간의 사이에 인간을 표현한다면, ‘긋’은 정신의 존재로서 사람을 표현한다. 이와 같이 다석은 한글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철학적 의미에 자신의 사상을 더했다. 글자를 만들어 내거나 붙이거나 바꾸어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32쪽

다석은 맞춤법 개정안보다 씨알말을 살려 제한 없이 글자를 붙여 쓸 수 있었던 훈민정음 당시의 표기 방법이 뜻을 전달하기에 더 맞는다고 보았다. 문자의 언어적인 보편 타당성보다 글자 본래의 뜻을 살리는 쪽이 옳다고 여겼다. 한글은 글자 하나가 씨알말이 되어 의미를 전하는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석은 핵심적인 명사, 동사의 씨알말인 ‘아, 어, 한, 솟, 있, 없’같이 글자 하나를 중심으로 한글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의미가 명쾌하고 다른 닿자나 홀자를 붙였을 때 뜻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으며, 쪽자를 붙여 의미를 확장하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뜻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데 군더더기라고 생각했던 형용사, 부사, 용언, 조사들은 사용이 점차 줄어들었다.

106쪽

형태와 자리에 의해 낱자의 의미가 결정되고, 문장의 의미가 결정된다. 낱자의 위치를 결합해 생각을 풀어가는 방법이다. 낱자의 의미 하나하나와 이 낱자들의 이루는 구조에 의해 생성되는 의미는 일반적인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석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풀이하는 그림이 되었다. 다석은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를 섞어서 쓰기도 하고, 읽는 방법이나 순서에 따라 문장이 나타나 뜻이 확장되기도 하고, 원형으로 글자를 배열해 무한하게 돌고 도는 의미를 표현하곤 했다. 다 석의 글은 앞부터 읽어 나가야 하는 문장의 구조를 공간으로 확장한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안과 밖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강조되어 더욱더 입체적이고 함축적인 의미 변화 구조를 가지게 된다.

151쪽

ㅁ은 ㄱ과 ㄴ이 모여서 이루어진 형태다. 이것을 다석은 모이고 고이는, 함께하는 의미로 생각했다. ‘ㅁ,ㅁ’은 ㅁ이 두 개 있다. 위쪽의 ㅁ은 하늘이 모인 것을 형상화했고, 다른 하나는 땅을 모은 것을 형상화했다. 그 가운데 ·를 찍어 사람을 표현한다. 그것이 몸이다. 우리의 몸은 하늘과 땅을 모으고 그 사이를 이어 연결한다. 그래서 우리말의 몸, 사람은 하늘과 땅을 이어 완성하는 존재가 된다. 다석이 생각하는 세계다. 글자에 세계와 우주가 들어 있는 꼴이다.
『다석일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자가 줄고 한글 그림으로 뜻을 풀어낸 곳이 많아진다. 여기 이 땅에서 태어나 살고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우리말이 꼭 맞는 생활 속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의 말 속에 우주와 삼라만상을 설명할 수 있는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세종대왕이, 그리고 다석 류영모가 알려 주었다.

189쪽

길 끝에 선 다석의 한글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적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꼭대기에 오르는 길은 여럿이다. 능선 따라 오르는 길도 있고, 쉬운 길, 험한 길도 있다. 돌아가기도 하고, 질러가기도 한다. 다석은 서구와 다른 방법으로 타이포그래피라는 산꼭대기에 올랐다. 글자의 모양이나 위치를 바꾸거나, 반복해 의미를 강조했다. 글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고, 글자를 반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다. 글자들은 의도에 따라 새롭게 배치되었고, 우리 말을 표기하는 기호를 넘어, 쪽자들이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패턴화되거나 이미지가 되었다. 다석은 우리말이 가진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상과 한글이 가진 기호로서의 표기 능력, 곧 닿자, 홀자, 낱자들의 의미를 재료 삼아 자신의 사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글의 형태를 실험했다. 한민족의 속에 담겨 있던 철학, 우주적 세계관을 구체적인 한글로 나타내기 위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 세상을 깨고 깨달음에 닿은 사상을 단정한 자세로 앉아 하나씩 그려나갔다.

207쪽

우리말 속에 우주를 밝힐 수 있는 우리의 철학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 말씀을 귀하다 여긴 것이다. 말이 있고 글이 따라온다. ‘말과 글’이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글과 말’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말하기’를 가장 직관적으로 시각화한 소리 표기 방식이므로 훈민정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고 이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에 대해 말하기를 “사람의 소리가 다 음양의 이치가 있되, 돌아보건대 사람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정음(한글)’을 만든 것은 처음부터 슬기로써 이룩하고 애써 만든 것이 아니라, 다만 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할 따름이니,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거늘, 어찌 하늘과 땅과 귀신으로 더불어 그 쓰임(작용)을 같이 하지 않으리오.”라고 했다. 그저 존재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주기를 찾은 것이 발견인 것처럼 우주가 흘러가는 거대한 원리를 표시할 수 있는 글자를 발견한 것이다.

215쪽

차례

추천 글
여는 글

1 솟.알.머리.
2 씨.알.글씨.낱.낱.
뜻.낸.쪽자.
붙.덧.글자.
글자.속.글자.
뜻.그림.글씨.
겹.뜻.글.
맞.댄.글자.
븬.탕.글자.
둥근.글.
3 다.석.알.맞이.
4 글자.멋.지음.
5 한.글.

마치는 글
참고문헌
주석

황준필

그래픽 디자이너. 홍익대학교에서 석사 논문을 쓰며 다석을 만나 다석의 한글 씀이 한글을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바탕을 넓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오래 써왔던 우리말에 깊은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으며, 세종이 이를 기호화해 한글을 지었고, 다석은 한글의 기호적 의미를 다시 시각화했음을 깨달았다. 현재 스튜디오 ‘디자인하다’에서 한글을 사용해 멋짓는 디자인을 한다. 한양대, 가천대, 한세대에서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을 강의했으며, IF 디자인 어워드 등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회원이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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